• 입력 2005.03.17 06:02
한나라 고조인 유방을 도와 중국을 천하 통일한 장량이란 사람은 벼슬까지 하사받은 일등개국공신 이었으나 부귀영화와 권력을 물리치고 낙향하여 청빈하게 삶을 소일하게 된다. 그는 정자를 지어 그 현판을 방원 각이라 하였다. 이곳은 자신의 철학을 반영한 것으로 네모난 것을 계속 쌓아 올려 그것이 누적돼 위에서 내려다 본 조감도는 결국 원이 된다는 것이다. 다음은 부귀영화를 사양하고 낙향한 장량을 원망한 아들에게 들려준 이야기다. 방원 각은 이런 것이다. 둥근 것은 가득한 것이다. 또 때로는 텅비어있다 비어있지 않고 들어갈 수 없고 가득하지 않고서는 또 이길 수 없다. 모질 때 서리같이 모질어야하며 둥글 때는 한없이 둥글어야 한다. 일신의 영화에 취한 진나라를 쳐부수기 위해 유방을 도왔고 이겼다. 이제 천하 만민을 도탄에서 구해 냈으므로 내 할일을 다한 것이다. 남은 것은 내가 물러나는 것뿐이라고 하자 아들이 깊이 깨우치며 아버지의 아름다운 퇴장에 박수를 보냈다는 이야기이다. 이를 흠모한 후대인들이 장량이 산속에 들어가 신선이 되었다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아름다운 퇴장에 대한 최대의 여유가 아니겠는가? 군민들은 군 의회 의장 선거과정에서 발생된 문제로 일부 군 의원들의 사퇴를 바라고 있으나 법의 심판에 따라 결정하겠다는 입장인 듯 하다. 그러나 법만이 모든 정당성을 대신할 수는 없다. 법위에 군림하고 있는 것이 바로 민심이다. 이 민심은 즉흥적인 하나의 사건을 중심으로 형성된 것이 아닐 것이다. 수년간의 경험과 과정의 연속적 반복이 가져온 하나의 객관적 표현이다. 앞으로 잘 하겠다는 것은 자신의 기득권적 지위를 활용하여 변명할 기회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앞으로 잘하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린 감이 있다. 군민을 위한다면 이후 삶의 과정에서 정당성을 입증 받든지 아니면 만회 할 기회를 가져야 할 것이다. 때를 알지 못함은 욕심이요, 비굴함의 극치가 아니겠는가. 살구꽃은 삼월에 피고 국화꽃은 구월에 핀다. 이것이 다 제 때를 아는 까닭이다. 장량의 말이 함평의 현실에 가장 어울리는 것은 다 까닭이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