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06.03.25 17:05

패자를 위한 기도




 

바야흐로 선거철입니다. 지방선거 본선은 70일 남았습니다. 그러나 각 정당의 내부경선은 이미 진행되고 있습니다. 저의 지역구처럼 당내 경선이 끝난 곳도 있습니다.


당내 경선이 끝난 곳은 당내 경합자들의 승부가 거의(중앙당의 최종심사는 남았으므로) 결정됐습니다. 당내 경선이 진행되는 곳도 승부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유리한 사람과 불리한 사람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승자나 유리한 사람은 여유를 부립니다. 패자나 불리한 사람은 이런저런 불만을 말하거나 문제를 제기하곤 합니다. 불리한 경합자가 공정한 경쟁규칙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 요구는 가능한 한 수용될 필요가 있습니다. 경쟁규칙은 최대한 공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기 주장만을 일방적으로 고집하는 것은 지나칩니다. 자기 주장이 수용되지 않는다고 해서 극단적인 행동을 하거나 으름장을 놓는 것은 온당치 않습니다. 하물며 객관적으로 공정한 경쟁을 거쳤는데도 그 결과를 수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패배를 화풀이하려 한다면 그것은 더 말할 가치도 없습니다.


패배는 쓰라립니다. 예선이건 본선이건 선거에서의 패배는 더욱 참담합니다. 명예와 재산을 잃고 미래도 기대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패자, 특히 선거에서의 패자를 대할 때면 이쪽도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지곤 합니다. 뭐라고 위로해야 좋을지 안타까울 뿐입니다. 패자들께 하나님의 각별한 가호가 깃들기를 기도할 따름입니다.


담담하고 우아한 패자도 드물지만 있습니다. 저보다 나이가 아래인 두 사람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저는 그 분들께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젊은 그 분들의 절제와 여유에서 저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 분들의 미래를 저는 기대하게 됐습니다.


여론조사에서 상당한 차이로 패배한 A씨에게 제가 전화를 걸자 A씨는 큰 소리로 웃었습니다. 제가 “어떡하지요? 고생 많이 하셨는데”라고 위로하자 A씨는 “의원님, 제가 죄송합니다. 제 걱정은 마십시오. 저는 변함없이 당인(黨人)의 길을 걷겠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제가 오려 위로를 받은 기분이었습니다.


두 기관의 여론조사 가운데 한 곳에서는 이기고 다른 곳에서는 져서 평균 지지율에서 아슬아슬하게 패배한 B씨. 아마도 가장 가슴 아픈 패자일 B씨에게 제가 전화를 걸어 “어떡하지? 자네 지지율이 오른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조금만 더 올리지 그랬어?”하고 위로했습니다. 그러자 B씨는 “그러게 말입니다. 무슨 방법이 없는지 좀 알아봐 주세요.”하고 말했습니다. 제가 “그런 방법이 쉽게 있겠는가?”라고 하자 B씨는 “그럼 저는 마음을 정리해야 할까요?”하고 되물었습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패배를 받아들이기 어려웠겠지만, 그래도 의연하고 어른스러웠습니다.그러나 A씨나 B씨와는 다른 패자들이 훨씬 많습니다. 패배를 수용하지 못하고 뭔가에 분풀이를 하려는 듯한 분들도 계십니다. 그 분들의 참담한 마음이야 저도 아프도록 잘 압니다. 그런 분들께 무슨 말씀을 드려야 좋을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픔을 겪고 계실 모든 패자들께, 잠시 여유를 부리고 계실지도 모를 승자들께도 맥아더 장군의 기도와 불경의 한 토막을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패자를 위해, 아니 승자들까지를 위해 기도하는 심정으로 다음의 글을 드립니다. 맥아더 장군이 태평양전쟁 당시 아들에게 영적 유산으로 물려주려고 기록했다는 ‘아버지의 기도’ 가운데 몇 대목입니다.


“약할 때 자기를 돌아볼 줄 아는 여유와/


두려울 때 자신을 잃지 않는 대담함을 지니고/


정직한 패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승리에 겸손하고 온유한 자녀를 저에게 주옵소서.




자기 자신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게 하시고/


겸허한 마음을 갖게 하시어/


참된 위대함은 소박함에 있음을 알게 하시고/


참된 지혜는 열린 마음에 있으며/


참된 힘은 온유함에 있음을 명심하게 하옵소서.”




불경 ‘잡보잠경’의 몇 구절은 더욱 절절합니다. 곁들여 전해드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