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04.09.24 17:05

처녀를 수장한 돈내보

돈내보(洑)는 보에서 10리 가량 아래에 있는 나산면소재지인 삼축리 앞 들 5백여 정보에 물을 대주는 수리시설이었다.

이 보는 1968년에 시멘트로 튼튼히 만들어졌지만 그전에는 돌로 만들어졌으면서도 튼튼한 편이었다. 일부 자료는 이 보 축조년대를 1592년이라 쓰고 있으므로 사실이라면 4백여년 전 수리시설이다. 지금 볼 수 있는 시멘트 보는 길이가 60여m로 나산에서 2km쯤 상류에 있으며 삼도-나산간 도로에서 1백m거리에 있다. 현재는 상류도로변에 장승가로공원이 조성돼 있어 행인들이 쉬어가는 길목으로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다. 보의 위치가 물결이 도는 돌머리라 유지 관리의 어려움에 얽힌 전설이 있다.

옛날 보 밑에는 보의 물을 이용해 물레방아를 돌려 살아가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이 보는 이슬비만 내려도 금새 터져버려 이 보에 의지해 농사를 짓는 삼축리 사람들은 애를 태웠으며 물레방앗집은 항시 생계에 위협을 받았다. 비가 와 보가 터져 또 보수할 것을 걱정하던 삼축리 사람들과 물레방앗간 주인 꿈에 신선이 나타났다. ¨이 곳에 처녀를 제물로 받치지 않는 한 너희는 절대 보를 온전히 보전하지 못할 것이니라¨고 현몽했다. 이 꿈 얘기는 곧 마을에 퍼졌으나 제수로 받칠 처녀를 구할 길이 없었다.

물레방앗간에는 돈내라는 착한 딸이 있었다. 보가 터질 때마다 생계가 위협을 받는 가정형편과 보 공사에 바칠 처녀 때문에 수심에 잠겨있는 아버지를 생각한 효녀 돈내는 아버지 몰래 보에 나아가 스스로 투신자살 했다. 이후부터 이 보는 3백여년간 터질 줄 몰랐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이 보를 ``돈내보``라고 한다는 것이다.

일설에는 박첨지라는 사람이 동네 일을 위해 자기 딸 도례를 제물로 희사했다는 설도 있다.

이 돈내보는 여아를 수장하여 제수를 바치고야 터지지 않았다는 것으로 여아를 수장시켜 만든 보라 비가 오려면 이 봇물이 흐르는 소리는 마치 처녀가 우는 소리와도 같고 ``돈내, 돈내``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1972년 9월 함평군 교육청이 민속문화교육자료집으로 발간한 이 보의 전설은 사연이 좀 다르고 많이 각색된 듯 싶으나 소개한다.

옛날 나산에 가난한 노부부가 뒤늦게 아들 하나를 낳았다. 이 부부는 이 아이가 여섯살 나던 해 세상을 떠났다. 아이의 이름은 제동이었다. 제동이는 고아가 되어 걸식하던 끝에 어느 부자집 초동으로 들어가 자랐다. 제동이는 나이 30이 되도록 총각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머슴살이를 해야 했다. 뒤늦게 주인집 딸과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으나 그녀마저 부모들이 정해준 이름난 가문으로 시집을 가버렸다. 사랑을 잃은 제동은 자기 신세를 비관하고 마을 앞 보에 나가 투신자살해버렸다. 제동이가 보에 빠져 죽고부터 이 보는 이슬비만 내려도 터져버렸다. 이 보의 물로 농사를 짓던 아랫마을 사람들은 비온 뒤마다 보를 다시 막아야 하는 일이 큰일이 되고 말았다. 보의 보수사업에 동원되던 마을사람들 꿈에 제동이가 나타나 ¨총각으로 죽어 원혼을 씻을 길이 없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불쌍히 죽은 나를 위해 예쁜 처녀 하나만 보내주면 다시는 보가 터지지 않도록 해주겠다.¨고 말하고 사라졌다.

이튿날 보 보수에 나온 사람들은 원혼을 달래기 위해 처녀 구할 일을 걱정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보 밑 물레방앗간집 착한 딸 돈내가 마을과 부모를 위해 투신자살했다. 이후부터 보가 터지는 일이 없어졌으며 보의 이름이 ``돈내보``가 되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