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04.09.02 17:05

시조는 양을라(梁乙那), 개성조(改姓祖)는 탕(宕)

시조는 양을라(梁乙那)이며 그는 제주의 삼성혈(三姓穴)에서 역사 이전에 강생(降生)하여 탐라국(耽羅國)을 세워 그 후손이 9백년간 나라를 이끌었다.

개성조(改姓祖)는 탕(宕)이다.

그는 양을라의 원손(遠孫)이고 탐라국의 귀족이었는데 광순사(廣巡使)라는 직명을 가지고 신라에 입조하였다. 신라의 왕이 그를 국빈으로 대우하였고 “성주왕자(星主王子)”라는 작호를 내리고 신라의 조복(朝服)을 갖추게 하였다. 또 이 때 “량(良)”을 “양(梁)”으로 기록한 것이 양씨가 된 까닭이 되었다. 탕의 후손 순(洵)과 우량(友諒)이 각각 득관하여 분적하였다.

1985년 11월 1일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에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양씨는 전국에 29개본, 81,189 가호, 344,209명이 살아 성씨별 순위 25위며 100호이상인 본은 남원 52,265호, 제주 26,702호, 남양 631호, 청주 355호의 4개 본이다. 함평군에는 1969년 조사에서는 제주 126호, 남원 113호, 남양 6호, 영안(永安) 2호의 4개 본이 조사되었고, 1985년 조사에서는 가호를 이루고 사는 본이 제주 155호 635명, 남원 116호 438명의 2개본이고 가호를 이루지 않고 사는 본이 남양 3명, 청주 1명, 경주 1명으로 3개 본이며 합하여 5개 본이다.



■ 남원량씨(南原粱氏)



득관 1세조는 우량(友諒)이다. 그는 탕의 후손으로 신라 경덕왕 16년(景德王, 757)에 큰 공을 세워 남원백(南原伯)에 봉해지므로 하여 후손들이 본관을 남원으로 하였다.

크게 병부공(兵部公), 대장군공(大將軍公), 대방공(帶方公), 용성공(龍城公), 장영공파(章榮公派) 등이 있는데 함평에는 병부공파가 살고 있다. 함평 입향조는 득관조의 18세손 근(?)이 경기도 시흥의 부곡리에서 학교면 월호리 용호동(龍湖洞)에 정착하였고 그 후 입향조 근의 묘소는 월호리 망월동 뒷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