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04.08.18 17:05

“따각 따각” 돌머리 해수욕장 백사장을 바람처럼 질주하면서 종종 함평읍내 까지 말을 타고 나타나 이목을 집중시키는 기인이 있다.
천병마씨(64세, 함평읍 석성리)가 그 주인공이다.
석성리 주포마을에서도

아버지를 수갑채운 아들



도로 사정이 열악하고 버스가 많이 다니던 1950년대에 대도시 인근 마을에는 열차 통학생이 많았다. 거리에 따라 다르지만 아침 일찍 밥을 먹고 도시락을 준비하고 역으로 나가면 선배, 후배, 친구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한다. 남학생은 역사 한 쪽에 오물오물 모여 있는 여학생들을 힐끗 바라보다가 기차가 오면 우르르 올라타곤 하였다.

P군은 중학교부터 벌써 오 년째 기차통학을 하고 있다. 언제나 열차에 오르면 종착역까지 가는 동안 여객전무와 그리고 철도공안원이 있었다. 철도원 정복에 완장을 차고 수갑을 허리에 꿰어찬 그 공안원이 항상 순시하고 다니기 마련이다.

P군의 눈에 비친 공안원은 기차 안에서만큼은 절대적이고 힘도 제일 셀 뿐만 아니라 존경의 대상이었다. 어쩌다 통학권을 잃어버렸을 때도 그 분이 알아서 다 처리해 준다. 어른들도 기차표가 없으면 그 분이 데려 간다. 아! 언제 나도 커서 철도 공안원이 되어 기차를 마음대로 타 보고 기차 안에서 권력을 행사해 볼 수 있을까?

그게 꿈이었던 P군.

뜻이 있으면 길이 있는 법. 드디어 P군은 공안원이 되었다. 처음에는 가까운 거리의 열차에 탑승하여 임무를 수행하다가 점점 먼 거리 또 높은 등급의 기차를 타고 다니다가 마침내 서울 가는 열차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중, 하루는 아버님께서 서울에 출타하시겠단다.

P군의 말이 “아버님, 그저 역에 나오시기만 하십쇼. 서울까지 모든 일을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기차표도 없이 역에 들어가는 것부터 좋은 자리까지 아들이 다 마련해 놨으니 아버님은 즐거울 수 밖에, 그렇게 서울 중간쯤 갔을 때 쯤 열차에서는 항상 기차표 검사를 실시하는 것이다. 여객 전무님께서 일일이 표를 확인한 후 돌려주고 그 뒤에는 공안원이 따르고.

그런데 오늘은 한 사람이 더 늘었다. 그 동안 서울행 야간열차에 무임승차를 많이 한다는 정보가 들어갔던지 불시에 감사반원이 나온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 검표하는 것을 감산원이 일일이 확인하는 것이다. 호주머니에서 표를 내놓는 사람. 중절모 깃에 꽂아둔 표를 내미는 할아버지. 그런데 P군의 아버진 어떡하지?

앞 열차 칸에 먼저 간 P 공안원. 아버지 앞으로 와서 하는 말이 “아버지 손 좀 내밀어 봐요.”

“한 손 말고 두 손 다”

그러더니 갑자기 수감을 두 손에 철커덕 채우고는 “아무 말 말고 가만히 그대로 있으세요. 내가 풀어줄 때까지”하는 것이다.

드디어 아버지 앞에 온 여객 전무와 감사원이 보니 웬 노인이 수갑을 찬 채 앉아 있으니 감사원 하는 말이 “저 노인은 무언가?”

P공안원 “상습 무임 승차인 입니다. 지금 서울로 압송 중입니다. (1960년 늦가을 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