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04.07.21 17:05
전국 씨족 순위 33위, 42개 본 47,252 가호, 196,285명
함평노씨는 67호 278명으로 노씨 42본 중 18위다.
노씨 성은 주나라 건국공신 강태공(姜太公)의 후예 혜(?)가 제(齊)나라 노현(盧縣)에 봉해지면서 연유되었고 우리나라 노씨의 도시조 수(穗)는 중국 범양(范陽) 사람으로 안록산(安祿山) 의 난을 피해 신라 효성왕 7년(孝成王, 755)에 아들 9형제를 데리고 와 정착하였다.
그의 아들 9형제가 해(垓)는 광산, 오(塢)는 교하(交河), 지(址)는 풍천(豊川), 구(坵)는 장연(長淵), 만( )은 안동, 곤(坤)은 안강(安康), 증(增)은 연일, 판(坂)은 평양, 원(垣)은 곡산(谷山)에 각각 봉작됨에 본관을 삼고 분관하였다. 함평군에는 1969년 조사에서는 광산 244호, 선산 8호, 대구 7호, 오산 5호, 서해, 교하가 각 1호로 6개 본이 살았으나 1985년 조사에서는 광산 188호 703명, 교하 3호 18명으로 2개 본만 살고 있다.
광산노씨(光山盧氏)
수(穗)를 시조로 하고 해(垓)를 득관조(得貫祖), 만(蔓)을 1세조로 하고 있다. 함평군에는 만의 19세손인 성연(成連, 중륜-仲崙의 손자)이 1470년경 광주시의 우치에서 대야면(大也面, 현 월야면의 일부)에 이거하였고 그 후손이 해보면 모산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고, 20세손인 상지(尙枝, 중륜의 증손)가 1490년경 아들 극창(克昌)을 데리고 광주의 우치에서 나산면 송암리로 이거 정착하여 후손이 번성하였다. 성연의 묘는 월야면 서당동에 있고 상지의 묘는 나산면 송암리 송계 뒷산에 있다.
1985년 조사에서 함평군에 188호 703명이 살고 있어 함평군 본관별 씨족 중 인구 순위로 29위(1969년 조사 21위)를 차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