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06.04.24 17:00

위기의 함평 구해낼 경영전문가


 




“먼저 12년 조합장 재임기간 중 괄목할 성과를 거두고 명예롭게 퇴임할 수 있도록 그동안 협조와 성원을 아끼지 않은 조합원여러분과 축협 임직원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지난 3월 17일은 개인적으로 제게 있어서 축협조합장을 마감하는 날이기도 하지만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지난 12년간의 조합장 재직동안 보람을 느낀 일도 많았고, 아쉽고 안타까운 일 또한 많았지만, 제가 태어나 이 자리에 있기까지의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니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저는 1947년 죽산 안씨 이제공파 27대손으로 함평군 나산면 수하리 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힘들고 어려운 유난시절을 보냈습니다. 병약하신 부모님과 세 명의 동생들 속에서 열여섯 이라는 어린 나이에 집안의 가장이 되어야했고 그로 인하여 많은 것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었고,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 최종학력이 나산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저는 어려운 환경을 원망하지도 않았고, 저를 학교 보내주지 않으신 부모님을 탓하지도 않았습니다.


저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열심히 생활하여 가정을 꾸렸습니다. 배움에 대한 강한 열망으로 전남대학교와 목포대학교의 행정대학원과 경영대학원을 수료했고 최근에는 초등학교 졸업 40여년이 지난 2005년에 들어서야 목포제일정보중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은 목포제일정보고등학교에 재학 중에 있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유년시절을 보내며 저는 가장이라는 책임을 위해 ‘돼지 2마리’ 밑천으로 소규모 축산업을 시작하였고 그로 인하여 자연스럽게 축산인 들의 정정당당한 권익보호와 소득창출에 관하여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축산업에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축협의 이사로 일하면서 전반적인 축협의 의무를 제고 하였고 몇 차례 경영전략을 제공하기도 했지만 조합장의 역할이 구성원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는 것을 인식하여 축협 조합장에 출마, 당선 되었습니다.


1994년 조합장 취임 당시 함평축협은 자산 규모 200억대의 열악한 조건이었으나 여러 조합원들과 임직원들의 강한 결집으로 패배주의에 팽배해있던 조합 조직의 분위기를 쇄신하여 새로운 조합 출발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결과 1994년 취임과 동시에 축협중앙회 조합업적평가 전국 우수 조합상 수상과 1995년 축협중앙회 조합업적평가 전국 최우수조합으로 선정되어 수상의 영예를 안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함평축협은 조합원과 임직원 모두 강한 자신감과 자부심을 갖게 되어 적극적인 경영전략을 펼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갔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농촌의 현실은 갈수록 어려워져가고 있었고 농수축산업과 같은 1차 산업은 사양 산업이 되어 투자 자체가 기피되고 있는 실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달랐습니다. 모두 아시다시피 우리 함평군은 군민의 70%이상이 농업과 축산업 등 1차 산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또한 축산인 들의 권익보호와 소득창출이라는 목표의식을 가지고 임하는 조합장의 위치에서는 치밀하고 지속적인 연구가 결부된 전략경영을 통해 농촌이 처한 위기를 벗어나야 한다는 강한 의지가 있었습니다.


그 사업의 일환으로 함평축협은 2001년 소값 하락으로 소 한 마리당 약 150~200만원으로 거래되던 시절 축산 농가당 5마리 정도의 소를 구입하여 축산의 저변을 넓혀가는 이른바 “개미군단”조성, 당시 붕괴 위기에 놓여있던 축산업을 지켜내는 방어벽을 만들어갔습니다.


그 당시에는 이미 1차 산업 역시 소규모 경영은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했기에 이러한 함평축협의 전략을 모두가 비웃었지만 ‘개미군단’의 전략은 크게 성공하였고 전국적으로 벤치마킹의 대상으로 까지 확대되었습니다. 이는 어떠한 시대의 흐름이던지 자기 내부에 맞게 변화, 발전시킬 수 있는 전략적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