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8.25 11:33

함평에 온 후 처음 맞는 여름과 이별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여름의 시작 6월 말부터 7월까지는 한달 내내 비가 왔었고 비가 그친 8월은 한낮의 열기가 온 대지를 삶아낼 정도로 무더웠다. 그렇게 힘들게 보낸 여름도 아침 저녁으로 조금씩 시원해 진다는 처서(處暑)를 앞두고 있다.

 

아는 지인이 독후감을 보내왔다. 내가 원불교에 몸담고 있는 줄을 알기에 소태산평전-솥에서 난 성자(김형수 지음, 문학동네, 2016) 읽은 소감을 카톡으로 보낸 것이다. 이분은 소태산에 대해 잘 몰랐지만 작가 김형수가 지은 김남주 평전을 너무 감명 깊게 읽어 순전히 김형수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장장 3주에 걸쳐 459쪽 두꺼운 책을 완독했다 한다.

 

김형수는 알다시피 함평태생으로 우리 고장이 낳은 중견 문학 작가 이다. 전임지 논산교당에 근무할 때 인근 부여 신동엽 문학관에서 일하는 그를 만나 일면식이 있다. 나에게 독후감을 보내준 지인처럼 나도 순전히 김남주라는 이름에 팔려 김남주 평전을 구입해 읽고 있다.

 

80년대 대학을 다닌 내 또래의 사람들은 모두 광주민주화항쟁에 부채 의식을 가지고 있다. 나도 그렇다. 그래서 더 김남주 같은 혁명가에 눈길이 간다.

 

김남주는 이승만 시대부터 박정희, 전두환 시대를 아우르는 그 암울한 때에 현실의 모순을 질타하고 참다운 길을 적극적으로 모색한 시인이자 전사(戰士)라고 알고 있지만 삶에 대한 정확한 내용과 행간은 몰랐던 터에 노안(老眼)이 시작된 눈을 비비며 꾸역 꾸역 읽고 있다.

 

이야기는 1894년 동학혁명부터 시작된다. 고부의 전봉준 주력부대는 공주 우금치로 향했지만 배후에 남아있던 남도의 동학군은 해안가를 통해 들어올지 모르는 일본군을 방어하기 위해 지역에 남았었고 이후 주력부대를 괴멸시킨 일본군은 산으로 섬으로 쫒기듯 도망간 남도의 동학군을 사냥해 사내처럼 보이는 남정네들은 모두 참화를 당했다.

 

당대에 의식 있고 지식 있는 사람들이 몰살을 당한후 한 아이가 해남지역 양반 기와집으로 머슴을 살러온다. 먹여주고 재워 주기만 하면 어떤 일이든지 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20년을 하루같이 주인을 위해 일한 덕분에 애꾸눈 딸을 받아 데릴사위가 되는데 그 집의 둘째로 김남주가 태어난다.

 

확실히 명석한 머리를 가진 천재가 있다는 것에 나는 동의한다. 하나 가르치면 10개를 안다는 것이 거짓말이 아닌 것처럼 김남주는 남의 집 머슴으로 평생을 살아온 아버지의 자부심 이었으며 부자집 딸이지만 장애를 가진 탓에 머슴에게 시집온 어머니의 한()을 풀어주는 아들이었다. 영어 선생님의 혹독한 훈육과 체벌 교육을 견딘 덕분에 중학생때부터 영어 원서를 읽고 외부의 사상가 지식을 습득하였다.

 

베트남 베트콩 출신 시인 반레는 1980년대 초 베트남 라디오에서 김남주 시가 흘러나왔고 감옥에서 시를 썼다는 한국의 전사 시인 김남주를 생각하며 호치민을 떠 올렸다고 말했다.

 

2003년 한국을 초청 방문했을 때 공식 일정을 마치고 관광이나 쇼핑을 마다하고 김남주 시인 묘지를 방문하고 싶다는 뜻을 보였다. 광주 망월동을 찾아 국화꽃을 놓고 절을 하고 조용히 흐느꼈다. 베트남 조국 해방전쟁 속에서 스러진 수많은 동료 젊은이들의 무덤을 지나며 흘린 눈물처럼 김남주 시인의 삶에서 그는 친구의 동질감을 느꼈다.

 

그 사람이 아니면 그 사람을 모른다. 내가 수영을 잘해야 상대방이 수영을 얼마나 하는지 알 수 있듯이 말이다. 그 경지에 도달해야 경지에 도달한 사람의 실력을 평가할 수 있다. 김남주의 삶을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그가 꿈꾼 세상은 차별과 특권과 반칙이 사라지고 우리 모두가 존경받고 공경하는 공평한 세상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