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6.26 11:09

 

오랜 옛날부터 산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고 사람들은 주변 산에 각각 이름을 지었다. 함평군의 최고봉인 모악산도 산들의 어머니라는 의미로 이름이 지어져 전해 내려왔다. 모악산은 1530년에 제작된 신증동국여지승람과 1861년에 만들어져 보물 제850으로 지정된 대동여지도에도 등장한다. 이외에도 많은 기록에 모악산이라는 이름이 기재되어 그 역사성을 방증하고 있다. 이렇듯 모악산은 국가기관으로부터 이름이 공식화되기 훨씬 이전부터 오랫동안 지역민의 입에서 입으로 그 이름이 불려져 왔다. 모악산이 국가기록으로 남겨진 것은 19614월로, 현재의 국토지리정보원에 해당하는 국무원이 모악산이라는 이름을 정식으로 고시하면서 공식화되었다.

그러나 지난 2003, 영광군의 요청으로 국토지리정보원이 함평군에 속한 모악산 정상인 연실봉(516m)이 아닌 영광군에 위치한 352m 지점을 불갑산으로 등재했다. 실제로는 하나의 산이지만 공식적으로 두 개의 이름을 갖게 된 셈이다. 이후 전남도가 도립공원 지정 시 함평군 반대 입장에 따라 201812월 모악산이라는 이름이 아닌 불갑산도립공원 신규 지정안을 도립공원위원회에서 통과시켰고, 이듬해 110일 불갑사를 포함한 영광지역의 산 일대를 불갑산도립공원으로 지정했다. 이런 여파로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국 최대규모 상사화 군락지로 불갑산이라는 이름으로만 기억하게 되었고, 불갑산은 오롯이 영광지역의 산으로만 인식하게 만들었다.

필자는 함평군이 설령 도립공원 지정을 반대했다 하더라도 불갑사가 본래 모악산에 위치해 있었으므로 도립공원 이름은 당연히 모악산도립공원이 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도 불갑사 일주문 앞 선돌에는 불갑산의 불갑사가 아닌 모악산 불갑사법계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 등 불갑사가 모악산에 근본을 두고 있음을 뒷받침하는 자료는 수없이 많다. 불갑사 홈페이지 사찰소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불교대표방송인 BTN 등 너무나 많은 자료에서 불갑사가 모악산에 뿌리를 두고 세워진 절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필자는 불갑산이라는 명칭을 가지고 영광군과 함평군의 분란을 조장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모악산이 함평과 영광의 경계에 걸쳐있는 산이기에 자칫하면 서로 오해가 생겨 곧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어 서로 상생하고 자연의 순리를 따라야 한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자연의 순리와 시간의 섭리에 순응했던 불교인들과 스님들이 지켜왔던 사찰 명칭을 정하는 옛 방식, 불교의 전통을 존중하는 모악산이라는 이름 그대로를 존중해야 한다. 또한, 여러 역사적 자료에 모악산이라는 산 이름이 이미 기재되어있고 오랫동안 지역주민으로부터 불려진 고유한 지명이라는 점도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

과이불개시위과의(過而不改是謂過矣) 라는 말이 있다. ‘잘못한 것을 알고도 고치지 않는 것을 잘못이라고 한다라는 뜻이다. 앞서 말했듯이 도립공원이 모악산도립공원이 아닌 불갑산도립공원으로 명명할 때 그 시작부터 잘못 꿰어진 단추였던 만큼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홍길동처럼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시대가 아니니 말이다.

필자는 어린시절부터 모악산이라고 듣고 부르며 자라온 함평군민들의 모악산과 함께한 추억과 자긍심을 등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전라남도는 역사적 배경이 배제된 채 하나의 산에 두 개의 이름을 가지면서 발생한 혼선과 논란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바로 잡아야 한다. 명명백백한 고증을 통해 산 명칭을 일원화하고 모악산의 본연의 이름을 도민들에게 이제라도 되돌려야 줘야 한다. 조속히 본래 불갑사의 뿌리인 모악산의 이름을 되찾아 더 큰 혼란을 막고 다시는 이러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