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4.03 11:08

남도의 봄 바람은 꽃소식을 머금고 온다. 아침 좌선이 마치면 한우 동상 앞에서 위령재(慰靈齋)를 모신다. 함평교당에 부임해 온 이후 꿈속에 한우 영가들이 나타난다. 함평 엑스포공원 북문주차장 입구에 있는 황소 모형 동상 그 모습이다. 한우 영가들은 큰 눈을 꿈벅 꿈벅하면서 나에게 무슨 말을 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다. 내 짐작으로 그들을 위해서 무엇인가 해 달라는 추론을 해본다.

전임지 순창교당에 근무할 때도 같은 유형의 꿈을 꾼 적이 있다. 구제역 파동으로 돼지와 소를 생매장하며 그 일을 대신한 공무원들이 트라우마 고통을 겪을 때이다. 그때도 짐승 영가들이 나타나 무언의 하소연을 하였다.

살아가면서 불가피하게 다른 생명체를 대신해야 하는 일이 있다. 원불교 대종경을 보면 교조(敎祖) 소태산 대종사가 부산지역의 신도들을 만나면서 고민을 상담해 주는 이야기가 나온다. 해안가에 거주하는 이유로 물고기를 잡는 제자들이 불가(佛家)에서 금하는 살생을 직업으로 하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는 말에 대종사는 생업을 일시에 바꾸는 것은 힘든 일이므로 다른 계문을 지성으로 지킨다면 직업을 대신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긴다고 말이다.

동학의 2대 교주 최시형은 스승인 최제우의 도통을 이어받아 일평생을 관군으로부터 도망다니면서 포교에 전념하였다. 어느날 제자들과 해안가를 거니는데 황새가 조개를 주어먹는 모습을 보면서 하늘님이 하늘님을 먹는다(이천식천, 以天食天)는 유명한 법문을 하였다. 풀이하면 음식이 되어준 생명들도 하늘의 일부인 만큼 하늘이 하늘을 먹는다며 정당한 먹이사슬을 인정한 것이다. 하늘인 내가 다른 하늘을 먹이로서 접하면 그 생명력이 나에게 부활되어 연결된다.

우주의 생명계에는 생혼(生魂) 영혼(靈魂) 각혼(覺魂)이 있다. 식물영역에 속한 생명력이 생혼이고 동물영역에 속한 생명력이 영혼이고 영장류인 사람에게 속한 생명력이 각혼이다.

식물들은 우주의 원천적인 생명력을 품고 있다. 따라서 초식동물은 식물을 먹이고 해서 살아가고 육식동물들은 초식동물을 먹이로 해서 살아가는데 두발 달린 짐승보다 네발 달린 짐승들이 더 높은 단위의 영혼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불가피 하게 육식을 하더라도 네발 달린 짐승보다 두발 달린 짐승을 섭취하라고 불가(佛家)의 스승들은 가르친다.

함평 한우(韓牛)는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구한말부터 전라도에서 으뜸가는 한우시장으로 이름이 났고 그 전통을 이어받아 축산업이 발달했다. 하지만 어떤 생명체도 기꺼이 자기를 희생하려 하지 않는다.

말 못하는 짐승이라도 일정한 시기가 되어 주인과 이별하려면 두 눈에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그 만큼 정()이 들어서이다. 아침 저녁으로 눈을 마주하며 먹이를 나누던 누렁황소가 장성(長成)하여 주인집을 떠날 때 심정은 어떠할까? 나를 팔아주어 감사하다고 할까?

꿈속에 나타나는 누렁 황소에게 말한다. 네 몫까지 행복하게 살아가겠다고. 너의 생명력이 나의 목숨으로 이어졌으니 너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열심히 살아가며 너의 명복(冥福)을 빌고 네가 더욱 진급되어 좋은 곳으로 가도록 축원하겠다고 말이다.

우리들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그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된다. 생명의 가치는 저울로 달았을 때 똑같은 눈금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삼가 함평 한우들의 희생에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