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0.03.24 11:23

이상익((63세) 민주당

우리 함평에 민주주주의는 살아 있는가?

‘남사스럽다.’라는 말은

남 보기에 창피하다. 남이 보기에 부끄럽다.

이런 뜻의 말이라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남사스럽다.’

지금의 우리 함평 모습은 이 ‘남사스럽다.’ 라는

한 마디 단어로 함축하여 말할 수 있습니다.

저 이상익은 지금에 우리 함평이 어쩌다 이리 남사스러운

동네가 되었는지 참으로 무거운 마음입니다.

1995년 6월 27일 우리 대한민국은 위대한 결정을 하게 됩니다.

민주주의라는 나무에 꽃이 활짝 피게 지방자치제도를

전격적으로 시행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함평에서는 지방자치 시행 20여년이 지나도록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기는커녕 민주주의의 근간인 정당정치의 기본 틀을 무너뜨리고 성숙하지 못한 선거문화로 인하여 선거를 치룰 때마다 큰 상처를 선명하게 남겼습니다.

정당 내에서 경선에 승복하지 않고, 탈당을 밥 먹듯이 쉽게 하였습니다.

선거운동기간에는 편을 갈라 죽기 살기로 선거전쟁을 치뤘습니다.

선거가 끝난 후에는 서로 격려하고 박수치며 악수하는 문화가 아니라

상대를 철저히 배제하는 적대적 선거 적폐를 쌓아갔습니다.

그런데 설상가상 2018, 2019년 연이어 터져 나온 전임 군수님들의 불미스러운 일로 인하여 우리 함평 군민들은 깊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이제 함평은 새롭게 변해야 합니다.

이상익은 함평에 민주주의가 뿌리 내리게 하고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 이번 군수 후보로 나섭니다. 그 동안 정치적으로 그 누구와 손을 잡고 정치적 행보를 하지 않은 깨끗한 사람이기에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한 함평의 여러 현안이나 분열되어 있는 군민을 하나로 묶어 내는데는 딱 ‘적임자’라고 자부합니다.

이상익은 함평 민주주의에 헌신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깨끗한 선거, 공정한 선거, 비방 없는 정책선거, 선거 후 화합의 문화를 반드시 실천하겠습니다.

함평에 농축수산인이 잘 살아야 함평군민이 부자가 됩니다.

저는 6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3남매 가장으로 세상을 힘들게 살았습니다. 그러다보니 버릇이 하나 생겼습니다. 힘들 때마다 이 어려움을, 이 가난을 어떻게 해서든지 이겨내겠다고 이를 꽉 물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지금에 제 입가 아래로는 주름이 깊이 생겼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힘든 농사일을 거들어야 했습니다. 12살 때는 논에 농약을 뿌리다가 하마터면 이 세상을 떠날 뻔 했었습니다.

삽과 곡갱이만으로 산을 개간하여 과수원도 만들었고, 소도 키웠습니다.

농사 지은 농산물 가격을 잘 받아볼려고 털털거리는 경운기를 몰고 광주로 목포로 3시간 거리를 마다않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우리 함평은 인구대비 1차 산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60%입니다. 함평 인구 절대다수인 농민이 잘 살아야 우리 함평에 경기가 좋아집니다. 함평 농축수산인의 주머니에 돈이 두둑해야 함평에 식당도 장사하는 가게에도 온기가 돌아 따뜻해집니다.

이제까지 함평의 정치 행정은 농축수산인을 위한 진정한 행정이 아쉬웠습니다.

군수의 독단과 입맛에 따라 행정이 옮겨갔습니다.

다수 농축수산인의 의견을 수렴하고 그들의 얘기를 경청하지 않았습니다.

이상익은 농사일에서 축사일 그리고 농산물 판매 유통까지 직접 몸으로 체득한 농민입니다. 함평 농축수산인들이 어떤 문제가 있고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가재는 게편’이기에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상익은 함평농축수산업의 근본 패러다임을 다시 짜겠습니다.

시대에 맞게 기본 틀과 방향을 새롭게 하겠습니다.

농축수산업의 혁신을 통해 함평에서 농축수산업에 종사하는 농민들이 잘 살 수 있게 하겠습니다.

농민 이상익은 함평 농축수산인에 대변자가 되고, 함평 농산물 세일즈맨이 되고자 함평군수에 출마합니다.

이상익에 손을 잡아주십시오.

소나무 껍질 같은 농민에 손! 이상익에 손을 잡아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