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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의병 역사공원’과 함평의 의병사 바로잡기김 철 수 박사/본지 편집고문 美솔로몬대학교 한국학장

전라남도가 펼치는 ‘남도의병 역사공원’건립에 대한 유치작업이 속도를 내고 있다. 우리고장 함평은 현재 전남도내 22개 시•군이 유치전에 뛰어든 가운데 그 어느 지역보다도 역사성을 갖고 있는 고장이다. 구한말 남일 심수택 의병장을 비롯하여 죽봉 김태원, 그리고 청봉 김율 형제 등 호남의병장 6거두(巨頭)가운데 절반인 3거두가 모두 우리고장 함평출신으로 일명‘항일의병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특히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은 올해 당시 중국에서 상해임시정부를 이끈 함평군 신광면 구봉리에서 출생한 일강 김철 선생과 그의 조카 김석, 그리고 월야면 출신의 안후덕 등이 모두 함평출신이며 현재 신광면 함정리 구봉부락 일강 김철 선생 생가터에 상해 임시정부 청사를 그대로 복원하여 상시 운영함으로서 대한민국의 근대사 교육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금년 추석명절이 지나고 제7호 태풍 ‘타파’가 한반도로 다가오던 지난22일 오후 비바람 속을 뚫고 필자를 찾아 온 항일의병 정희면 (鄭凞冕) 선생의 조카인 정병해 씨와 손자 정의성 씨는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을 수 없느냐는 것이었다. 나주가 본관인 정병해씨의 백부인 정희면 씨는 항일의병활동을 펼치다 행방불명이 되는 바람에 정희면 선생에 대한 기록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 80여 년 동안 명예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어 그 후손들 모두가 밤이면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할 정도라고 했다.

그래서 그동안 후손 중에 조카인 정병해(대동면 향교리 거주)씨와 직계 손자인 정의성(목포시 북교동 거주)씨가 ”증조부 정희면 선생의 독립유공자 공적 재심사 요청“이란 민원을 국민신문고로 보내 (신청번호:IBA-1809-282635, 2018,9,18) 소관부처인 보훈처로 부터 회신을 받은바 있다. 그러나 기록이나 객관적인 사실을 증명하지 못해 독립유공자 포상이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이들을 보내고 난 후 차분히 함평 군사를 살펴보았더니 제1권 제6편 924쪽 <조선시대의 함평> 란에 이들의 조상인 정희면(鄭凞冕)씨에 대한 기록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런데 925쪽에도 정희면(鄭凞冕)이란 같은 이름의 독립유공자가 또 한사람 기록되어 있고 924쪽에는 본관이 나주로 표기되어 있고 출생일자와 사망일자가 표기되지 않았으며 대한민국 정부로 부터 1990년 건국훈장애족장을 추서했다. 로 되어있었다. 그런데 925쪽에 기록된 정희면(鄭凞冕)씨는 생존기간이 1866년 8.15일~1945년 9.14 일로 표기되어 있어 동명2인이 당시 함평출신의 의병과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2인의 독립운동 내용이 똑 같고 두 분 모두 같은 해인 1990년에 정부로 부로 건국훈장을 추서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한분인 함평읍 내교리 297번지에서 1892년 6.2일 출생하여 1936년 4.4일 작고한 본관인 나주정씨 희면(鄭凞冕)선생은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은바가 없다. 그런데 군사에는 받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한 지역에서 동명2인이 있을 수는 있지만 두 사람이 각기 출생년도가 1892년과 1886으로 26년 차이가 나는데 똑 같은 시대에 같은 독립운동을 할 수가 있단 말이며 그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과도 나이차가 26년이나 난다는 것은 일반 상식적으로도 이해가 되지 않은 일이었다. 나주가 본관인 정희면씨의 조카 정병해씨와 손자인 정의성 씨는 정희면 선생의 제적등본을 가지고 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잘못된 역사는 바로잡아 올바르게 해야 하는 것이 후손들의 몫이요 지성인들의 사명이 아니겠습니까?“

함평신문  hpnews@hp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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