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5.10.25 14:48

아버지 묘가 감쪽같이 사라져버렸어요

도지사의 공약사업인 대동 소방서 신축부지 공사가 함평군의 행정 착오로 첫 단추부터 삐긋 거리고 있다.

경기도에 사는 A씨는 지난 4일 이른 성묘를 위해 고향인 전남 함평군 대동면의 아버지 묘소를 찾았다가 깜짝 놀랐다. 누군가 아버지 묘의 봉분을 파헤치고 유골을 수습해 간 흔적만 남았기 때문이다. A씨는 지난 7월 함평군으로부터 아버지 묘가 있는 일대가 함평 소방서 신축 부지로 결정돼 이장을 협조해달라는 공문을 받은 게 문득 떠올랐다.

A씨는 당시 함평군 담당자에게 추석 이후에나 아버지 묘 이장이 가능할 것 같다는 답변을 했다. 그래서 사실상 올해 마지막 성묘를 하러 온 것이다. 감쪽같이 사라진 아버지 묫자리에서 넋을 잃은 A씨는 “묘소를 지키지 못한 불효자식을 용서해 달라”고 자책했다.

A씨는 아버지 묘가 사라진 것이 함평군의 소방서 공사와 관련이 있다고 판단했다. 함평군이 지난달 소방서 신축 공사를 위해 A씨 아버지의 묘가 있는 일대의 무연고 묘 17기에 대한 분묘 개장을 한 사실을 확인했다. 함평군은 절차를 거쳐 무연고 묘부터 개장한 후 연고지 묘를 이장할 계획이었다.

A씨는 아버지 묘가 후손들 몰래 개장된 것이 순전히 함평군의 착오에서 비롯된 점도 뒤늦게 알게 됐다. 함평군의 분묘 기초조사 당시 A씨 아버지 묘는 유연고로 분류돼 연고자인 A씨에게 이장 통보까지 된 상태였다.

하지만 지난달 무연고 묘 개장 공사를 하면서 착오로 A씨 아버지 묘가 무연고에 포함됐다는 게 함평군의 해명이다. 함평군과 묘지 개장업체가 개장 공사를 하면서 착오로 혼선을 빚었다는 것이다. 함평군의 한 관계자는 “A씨의 경우 연고 묘인데도 무연고 묘로 착각해 이 같은 일이 벌어졌다”며 행정착오를 시인했다.

A씨의 억울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A씨는 묘의 이장 상태가 석연치 않은 데다 부친이 꿈에 나타난 점을 이상히 여겨 이미 개장된 아버지 묘를 다시 파봤다. A씨는 두 번째 깜짝 놀랐다. 함평군이 이미 화장해 봉안소에 안장했다던 아버지 유골이 땅속에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A씨는 40년 만에 유골로 아버지를 다시 만난 것이다. A씨는 아버지의 유골을 수습해 인근의 추모공원에 안치했다.

A씨는 하마터면 아버지 유골을 공사장에 널부러지게 놔두었을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떨린다고 했다. A씨는 원래대로 아버지 묘를 만들어 그 영혼을 달랬다. A씨는 “함평군이나 개장업체가 유골을 수습하지 않았으면서도 거짓으로 이장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며 진상조사를 요구했다.

함평군은 A씨 아버지의 유골이 수습되지 않은 점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함평군 관계자는 “A씨 아버지 묘 부근에 또 다른 확인되지 않는 무연고 묘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며 “이 무연고 묘를 수습하고 A씨 아버지 묘로 오인한 것 같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