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4.01.21 11:31

<강경호 시인의 추억의 창-23>

(시인, 문학평론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중학교 입시공부를 하느라고 학교 뒷산 당마산 너럭바위에 올라가 공부를 할 때, 누군가 교실에서 부르는 하모니카 소리가 내 마음 속의 슬픔과 우수를 깨웠다. 아직 열두 살의 어린 나이였지만 늬엿늬엿 지는 해를 배경삼아 듣는 하모니카가 들려주는 「섬집아기」라는 동요는 절창이었다. 바닷가 마을에 사는 나는 바닷가에 나갔다가 저녁무렵 집으로 바구니를 들고 돌아오는 어머니가 떠올랐다. 감수성이 예민했던 나는 애처로운 하모니카 소리가 들려주는 아이를 혼자 두고 바다에 나가 게와 고둥을 줍던 어머니가 아이가 걱정되어 다 못 찬 바구니를 들고 바쁘게 집으로 돌아온다는 「섬집아기」의 내용 속으로 빠져, 마치 노래속의 아기가 된 것 마냥 의미와 정서가 내게로 전이되어 나는 누군가가 들려주는 하모니카 소리에 푹 빠졌다. 그래서 하모니카 소리가 미치게도 좋았다.


중학교 1학년 열세 살 때, 읍내 중학교에 진학하여 문구점에서 하모니카를 샀다. 처음 만져보는 하모니카를 혼자서 불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그저 노래가 되지 못한 소리만 났지만 어떻게 하다 보니 하모니카로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악보도 없이 노래만 알면 모두가 노래가 되었다. 나는 아이들 속에서 하모니카를 잘 부는 재간꾼이었다. 혼자서 마당에 나가 하얗게 비춰주는 달빛 아래에서, 아무도 없는 파도만 들락날락 하는 바닷가 둑 위에 앉아, 나의 하모니카 연주는 나를 외롭고 슬픈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두 살 아래인 아우도 하모니카를 잘 불었다. 형인 나보다 잘 불어 우리 형제는 하모니카로 화음을 맞춰가며 연주했다. 훗날 아우는 바다 건너 해제마을에서 쓸쓸하게 세상을 마감하였지만, 끝까지 아우를 지켜주던 것도 하모니카였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는 어쩐지 비애가 가득한 것들이었다. 서울에 돈 벌러 갔다가 몇 해 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는 누님을 생각하며 쓸쓸한 마음으로 하모니카를 불었다. 그때 내가 불렀던 노래의 제목은 잊었지만 “고향땅이 여기서 얼마나 되나, 푸른 하늘 끝닿은 거기가 거긴가……” 하는 내용의 노래였다. 물론 「섬집아기」는 나의 십팔번이었다. 어쩌다가 어른들이 부르는 노래도 불렀다. “가도 가도 사막의 길, 끝없는 사막의 길” 하며 부르는 옛노래에서는 방랑과 유랑의 길을 걷는 나그네의 심정이 가슴을 찔렀고, 「성불사의 밤」에서는 적막한 산사의 밤의 우수를 느꼈다.


훗날 매형이 부르는 하모니카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요즘말로 매형은 하모니카의 달인이었다. 매형은 지금껏 내가 보지 못한 커다란 하모니카를 여러 개를 가지고 있었다. 나처럼 어렸을 때부터 집 뒤의 산에서 소를 먹이기에 올랐다가 소가 꼴을 뜯는 동안 혼자서 어린 날의 우수를 하모니카로 풀었다고 한다. 다른 아이들은 중학교에 진학해 학교를 다니는데 진학하지 못하고, 소를 먹이던 자신이 가엾어 어느 날 부모님 몰래 서울로 줄행랑 쳤다는 것이다. 그때마다 매형을 지켜주고 위로해 주던 것이 하모니카였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사연이 깃든 매형의 하모니카 소리는 지금껏 내가 들었던 가장 슬픈 노래였다.


매형이 하모니카 불 때에는 방창방창 울리는 베이스 소리에 듣는 이의 가슴에 바람을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다. 노래 중간 중간에 넣는 베이스에 깊은 슬픔에 빠졌다가도 흥에 겨워 어깨가 들썩들썩 거렸다. 그 무렵 나도 베이스쯤은 넣을 줄 알았지만 매형처럼 힘차거나 기교가 다양하지 못했다. 아무리 배워도 매형의 하모니카 솜씨를 따라가지 못했다. 누님이 죽고 일년 동안 누님을 그리워하다가 식음을 전폐하고 술로 세월을 보내던 매형은 일년 후에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지금은 죽어서 누님과 매형이 고향 언덕에 나란히 누워있다. 명절 때마다 누님과 매형의 무덤을 찾아가면 그 옛날 누님과 매형이 누워있는 그 언덕에서 소에게 꼴을 먹이며 불던 하모니카 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언젠가 매형이 나에게 자신이 쓰던 하모니카를 하나 선물한 적이 있다. 나는 그 하모니카를 불며 쓸쓸한 소년시절을 건너왔다. 이제는 나와 함께 유년의 강을 건너던 아우도 떠나고, 내게 하모니카 부는 방법을 가르쳐 준 매형과 누님도 이 세상을 떠나 더 이상 그들이 부르는 하모니카 소리를 듣지 못한다. 어찌된 일인지 언제부턴가 나도 하모니카를 잊고 살아왔다. 오랫동안 하모니카 소리 듣지 못했어도 누군가가 텔레비전에서 부르는 하모니카 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찢어진다.


어제는 후배 시인의 출판기념회에 다녀왔다. 그 후배가 하모니카를 불었다. 후배 시인이 하모니카를 불고 그 노래를 배경삼아 시인의 아내가 시를 낭송하였다. 나는 그 소리에서 수많은 하모니카 소리를 들었다. 아우가 부르는 하모니카 소리, 매형이 부르는 하모니카 소리, 그리고 까까머리 소년이 부르는 슬픈 하모니카 소리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