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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 부침개 지지던 소리<강경호 시인의 추억의 창-18>

 

   

강 경 호

(시인, 문학평론가)

비오는 날 부침개 지지는 소리 참 듣기 좋았다. 부침개는 주로 여름철 비오는 날 즐겨 해 먹었던 음식이다. 여름철 비가 내리는 때는 들판에 심은 모가 땅 힘을 받아 푸르러서 바람이 불면 파르라니 흔들렸다. 농사철 중에 비가 내리고 하니 조금 한가해진 때여서 부침개를 해먹기 좋은 때였다.

 


부침개는 특히 비오는 날 해먹는 것이 제격이다. 물론 비가 안와도 즐겨먹는 음식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음식 하나 해 먹는 데에도 대단한 감성과 심미성을 발휘했다. 비오는 날 비 냄새를 맡을 줄 아는 선조들은 비냄새 뿐만 아니라 빗소리가 전이시키는 감성에 쉽게 감염될 줄 알아 심미적 촉수가 대단히 예민했다.


땅을 적시고 나무와 풀과 꽃을 적시는 여름비에서 자연의 냄새를 맡으며 자연을 닮은 사람의 냄새와의 동질성을 갖는다. 또한 빗소리에서 사람의 감성을 건드려주는 것을 인식하게 되는데 이 빗소리를 닮은 것이 바로 부침개 부치는 소리이다. 이와 닮은 것이 콩볶는 소리여서, 그러므로 비 오는 날 빗소리와 부침개 부치는 소리, 그리고 콩볶는 소리는 쉽게 일체감을 갖게 되어 이 소리들에서 사람들은 정서적으로 어떤 쾌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옛날에는 오늘날처럼 특별한 간식거리가 없었다. 옥수수가 익으면 쪄먹고 감자와 고구마 밑이 들면 쪄먹는 것, 그리고 콩을 볶아 먹는다거나 부침개를 지져먹거나 밥솥 위에 밀가루 반죽을 얹어 개떡을 해먹는 것은 그래도 제법 입맛에 맞는 특별한 간식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렇듯 쉽게 간식거리가 없던 시절이어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비오는 날 부침개를 부쳐먹는 것은 대단히 즐거운 일이었다.


부침개는 부엌에서 부치기도 했지만 비가 들이치지 않는 처마 아래에 돌을 놓고 그 위에 가마솥 뚜껑을 거꾸로 걸치면 훌륭한 지짐솥이 되었다. 오늘날 같으면 가스렌즈에 후라이팬을 얹어 편리하게 부침개를 해먹지만 옛날에는 가마솥 뚜껑이 후라이팬 역할을 했다. 잘 마른 불쏘시개를 간이 아궁이에 쑤셔넣고 불을 때면 솥뚜껑에 열이 달아오르고 그 위에 돼지비계덩어리로 문지르면 ‘지지직’ 소리가 났다. 기름이 발라진 솥뚜껑 위에 부추나 애호박 썬 것을 섞은 밀가루 반죽을 얹는다. 그리고 놋수저로 평평하게 반죽을 편다. ‘지글지글’ 끓는 소리가 나면서 부침개가 익어간다. 앞뒤로 잘 뒤집다보면 부침개가 노릇노릇 익게 되는데 부침개를 하얗게 덜 익어도 안 되지만 태워도 안 되기 때문에 적당히 노릇노릇 해질 정도로 살짝 눌게 하면 바삭거리고 맛이 좋다.


온 집안에 부침개 지지는 냄새가 가득차고 아이들은 솥뚜껑 주위에 앉아 목구멍에 침을 꼴딱 꼴딱 넘기기 마련이다. 다 익은 부침개를 어머니가 젓가락으로 찢어 나누어 주면 제비새끼 마냥 금세 받아먹고 또 다시 지글지글 끓는 솥뚜껑 위를 눈이 빠져라 바라보곤 했다.


부침개는 서민의 식품이지만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좋아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서민 음식이다. 큰 노력을 안 들이면서 쉽고 간편하게 해먹을 수 있는 식품이기도 해 우리나라 사람이면 즐겨먹는다. 옛날에 비하면 재료가 다양해지고 종류도 여러 가지로 발전해 많은 사람들이 무척이나 좋아한다.


이 구수한 부침개는,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비오는 날의 정취와 아주 잘 어울리는 음식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오늘날에도 비가 오면 막걸리 한 잔과 더불어 부침개가 떠오른다. 젊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돈이 있건 없건 상관없이 가격이 아주 저렴한 부침개는 그 값을 더해주는데 우리 한국인의 입맛에 아주 잘 어울린다.


여름 장맛비가 연일 내린다. 그러다보니 방안이 눅눅하다. 보일러를 넣자 방바닥에 온기가 돌고 뜨끈해지면 스르르 잠이 몰려온다. 밖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데 그 빗소리가 부침개 지지는 소리를 떠오르게 한다. 부침개 지지는 소리와 빗소리의 목청이 닮아 비가 내리는 날은 자동적으로 부침개가 생각나게 하는 것이다.
오늘날은 어쩌면 향수 반 구수한 맛 반으로 부침개를 해먹는지 모른다. 아내가 만들어 주는 부침개 맛이 그 옛날 배고플 때 어머니가 해 주시던 부침개 맛일 수는 없지만 부침개를 먹으면 주마등처럼 수많은 추억이 떠오르고 비오는 날의 풍정이 떠오른다.

김은식 기자  hpnews@hp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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