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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를 생각하는 마음<강경호 시인의 추억의 창-14>

   
강 경 호
(시인, 문학평론가)

나이가 들어갈수록 부럽고 아쉬운 것이 있다. 선조들의 묘를 잘 모신 풍경이 그것이다. 특히 선산 아래에 반듯한 사당까지 있는 문중의 후손들이 부럽다.


그 동안 나는 몇몇 지방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쓰기 위해 수많은 문화유산과 서원, 향교, 사당, 충신각을 비롯한 효자각, 열녀비 등이 있는 현장을 답사하였다. 그 중에서 사당이 잘 보존된 문중의 숭모사상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가졌다.


나는 유년에 아버지를 따라 손불면 해창에서 신광면 원산리 갓점까지 걸어가거나 버스를 타고 갔다. 그곳에 누대에 걸친 선조들의 묘가 있는 선산이 있어 명절 때면 성묘하러 가곤 했다. 선산에 갈 때마다 큰아들이었던 아버지는 큰아들인 내게 웃대웃대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묘를 가르쳐 주셨다. 그 때마다 나는 숭모하는 마음과 더불어 뿌리에 대한 생각을 가졌다.


추석 무렵이면 아버지는 마을 가까운 전마굴 포구에 가서 비늘이 좋은 전어를 사오셨다. 산지기 천씨 노인에게 갖다드릴 선물이었다. 산지기 천씨 노인은 선산 부근에 있는 문중답을 벌면서 우리 조상님들의 묘를 벌초하며 선산을 관리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고마운 마음에 전어를 선물하곤 하셨던 것이다.


선산에는 감나무, 밤나무가 많아 우리 형제와 사촌형제들은 감을 따거나 밤을 주으러 다녔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를 따라 조상님들 묘를 찾아다니며 이른바 종손교육을 받곤 하였다. 묘가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어서 산길이 사라지고 풀숲이 우거진 숲속을 헤치며 괭이바위 부근에 있는 웃대 어느 할아버지의 묘까지 성묘하였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한 곳으로 선조들의 묘를 모셔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선산은 상무대로 편입이 되고 고향 뒷산에 새로 선산을 조성해 조상님들을 한 곳에 모셨지만, 유년에 괭이바위 부근에서 딱 한 번 성묘를 했던 조상님을 모시지 못했다. 유년에 아버지와 다시 괭이바위 부근을 뒤졌지만 숲이 우거져 묘를 찾지 못했던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그 할아버지를 선산에 모시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 하셨다. 그 할아버지는 200여년 전쯤에 이 땅에 살다 가신 분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죽어 자연 속에 동화되는 시간이, 무덤이 평지가 되어 사라지는 시간이 200여년 쯤 된다고 생각하였다. 나는 선산에 모시지 못한 할아버지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끼면서 인간존재의 생성과 소멸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사람은 태어나 생로병사의 법칙을 거역할 수가 없다. 언젠가는 반드시 죽기 마련인데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깊이 사색하고 자신의 삶을 살펴야 할 것이다. 유한한 삶이기에 보다 의미있게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주목나무는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을 산다고 하는데 고작 100년도 채 못 사는 인간은 육신의 생명보다는 죽음 이후까지 생명성을 지닐려면 생전에 어떻게 사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어린시절부터 마을 가까운 곳에 있는 공동묘지에 가면 죽음들이 즐비하다. 고향마을에 살았던 사람들이 죽어 그곳에서 또다른 마을을 이루고 산다. 내 아랫동생은 지금도 공동묘지에 잠들어 있다. 공동묘지에 갈 때마다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하곤 했다. 그곳에는 피붙이가 놓고 간 하얀 국화꽃 묶음이 놓여있다. 어느 묘지에는 소주병이 놓여있고 또 어느 묘지에는 죽은 자가 생전에 좋아했을 듯한 과자부스러기가 놓여 있다.


그런데 내가 다녀갈 때마다 단 한 번도 누군가가 다녀가지 않은 묘가 있다. 반쯤 허물어지고 벌초도 안해 풀이 무성하다. 언젠가는 무덤이 흙이 모두 흘러내려 평지가 되어 누군가의 죽음이 잊혀지고 말 것이다. 염창권 시인은 ‘죽음이 가벼워 돌로 눌러놓았다’고 그의 시 「고인돌」에서 노래했다. 우리 형제가 죽고 나면 내 아우의 무덤도 사라져 그의 존재도 잊혀질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살아있는 한 열심히 아우의 무덤을 찾아가보리라 생각을 한다.


이러한 나의 생각 때문인지 선조들의 무덤을 잘 가꾸고 모신 누군가의 선산을 보면 그 사람들의 지극한 마음이 부럽고 내 마음이 부끄럽다.


문화유산답사를 하면서 사당의 기왓장이 무너져 내린 어느 문중을 생각하면 갈수록 선조들에 대한 관심이 무뎌지는 오늘의 세태가 무척 아쉽다. 오늘날 컴퓨터가 엄청난 속도로 일을 처리하는 디지털 시대에 물질문명에 매몰된 인간의 본성이 안타까운 것은 내게 생명의 바톤을 이어준 선산의 죽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러므로 산 계곡에서 만난 이름없는 무덤들 조차 모두가 생명의 불꽃인 것이다.

김은식 기자  hpnews@hp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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