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2.05.14 10:10

 

                     스승의 날과 學松 조용성 선생님

                                                                                               김 철 수 박사

                                                                                              ·본지논설위원/美솔로몬대학교 예술대학장

 

 

5월15일은 제49회째 맞는 스승의 날이다. 세태의 급격한 변화에 따라 스승에 대한 제자들의 존경심도, 제자들에 대한 애틋한 스승의 사랑도 예전 같지 못한 게 현실이다. 스승의 날 제정은 1958년 충남 강경여고에 다니던 학생들 가운데 청소년적십자단원(RCY)들이 세계적십자의 날을 맞아 병중에 있거나 퇴직한 교사들을 위문하기 위해서 스승의 날을 정하자는 의견이 모아지면서 싹텄다. 그 후 1963년 10워31일부터 11월1일까지 개최된 제12차 청소년적십자 중앙학생협의회에서 스승을 위한 ‘은사의 날’을 5월24일로 정하고 기념할 것을 결의하였으며 이듬해인 1964년 5월 개최된 제13차 협의회에서 ‘은사의 날’을 ‘스승의 날’로 고쳐 부르기로 하고 날짜도 5월26일로 정했으며 ‘스승의 날’ 제정 취지문을 작성하여 발표함으로써 이때부터 제1회 스승의 날이 청소년적십자단원들에 의해서 기념되기 시작한 것이다. 1965년 4월 제14차 협의회에서는 스승의 날을 세종대왕의 탄신일인 5월15일로 정하기로 결의했는데 조선시대에 유교 국가였던 우리나라는 스승과 임금, 부모를 동격으로 보아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로 생각해왔고 조선시대 왕 가운데 유일하게 대왕(大王)으로 추앙받으며 존경받는 세종대왕의 탄신일이 5월15일어서 이날로 정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1973년부터는 모든 교육관련 기념행사를 국민교육헌장 선포일인 12월 5일로 통합하는 바람에 스승의 날 행사는 자연히 소홀해졌고 폐지되었다가 1982년 5월15일에 다시 부활되어 전국의 모 학교를 중심으로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필자에게는 더 없이 고마운 스승님 한 분 계신다. 필자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을 맡으셨던 존경하는 선생님으로 올 해 81세가 되신 학송(學松) 조용성 선생님이시다. 필자의 어렸을 적 기억을 되살려보면 6.25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 모든 사람들이 전쟁의 폐허를 딛고 가난과 무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때였다. 하루 세끼 제대로 밥조차 먹기 어려운 시대였는데 함평초등학교에 새로 부임 해 오신 학송 선생님께서는 아코디언과 풍금을 통해 경쾌한 음악으로 우리들에게 밝은 정서를 심어주시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시며 열정적으로 음악을 가르쳐주셨다.

특히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위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고 있던 저에게 아버지와 같이 자상하게 살펴주시고 끼니때가 되면 가끔 선생님의 집으로 데리고 가 맛있는 쌀밥과 생선을 구어 주시며 말썽꾸러기였던 저에게 학교생활에 재미를 붙여주시기 위해 학교방송국 진행을 맡겨주시고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시는 바람에 큰 어려움 없이 초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 만약 이 때 필자를 문제아로 방치했거나 무관심하게 놔두었다면 아마 내 인생이 지금과는 정 반대방향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학송 조용성 선생님은 1931년 11월7일에 필자의 고향이기도 한 전남 함평군 학교면 죽정리 상곡마을에서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어린 시절을 고향에서 보내고 1945년 조국광복과 함께 학다리중앙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청운의 꿈을 안고 국립목포사범학교에 입학 교육자가 되기 위한 길을 선택하셨다.

그 후 46년이란 세월동안 페스탈로찌의 후예로서 봉직하시다가 지난 1998년 2월에 모교인 학다리중앙초등학교 교장 직을 끝으로 정년 은퇴하셨다. 평소 경노효친사상과 상경하애의 인성교육에 중점을 두고 제자들을 가르쳐 오신 선생님께서는 고향사랑도 지극해 1971년 10월1일에는 새마을 사업의 일환으로 향리인 죽정리 정자마을에 사비를 들여 전기시설을 완료 54가구를 문화촌으로 조성하가도 하셨다. 또한 낙도에서 근무하실 때는 나라사랑의 실천운동으로 섬마을에 사비로 구입한 태극기를 집집마다 달아주는가 하면 섬마을 학생들에게 저금통장에 종자돈을 넣어 일일이 나눠줌으로 저축생활이 몸에 배도록 해주시기도 했다. 필자는 해마다 스승의 날이 되면 고마우신 스승님 내외분을 찾아 안부도 드리고 조촐한 식사 한 끼라도 정성으로 대접하는 기회를 갖도록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