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0.01.25 10:02

안병호 전 함평축협조합장
이덕무(李德懋·1741~1793)는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조선 후기 실학자이다. 사람취급도 못 받았다는 서자 출신에 가난과 병약한 몸이 늘 그림자마냥 따라다녀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였지만, 그는 정조 때 박제가 ·유득공 ·서이수 등과 함께 규장각(奎章閣) 검서관(檢書官)을 지낼 정도로 학식이 뛰어났다. 온종일 방에 들어앉아 책만 들여다보며 혼자 웃거나 고민하는 이덕무를 보면서 사람들은 그를 ‘간서치(看書痴)’라고 불렀다고 한다. 어딘가 모자라는, 책만 보는 바보라는 말이다.

이덕무는 타고난 환경이 참 고단한 학자였다. 조선시대 어디에도 낄 데가 없던 반쪽 양반의 핏줄인 서자로 태어났으니 글을 읽고 그 뜻을 익혀 배워나가도 써먹을 곳 없었다. 다시 말해 벼슬자리와는 거리가 먼 완벽한 비주류였던 셈이다.

요즘말로 치자면, 부(富)도 권력(權力)도 없는데다가 몸까지 허약해서 대학은커녕 중고등학교도 다니기 힘든 그런 불우한 학창시절을 보낸 것이다. 물론 요즘도 이런 환경을 극복하고 고학으로 고시를 합격한다거나 자수성가하여 사회의 모범이 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엄격한 신분질서로 정해진 삶을 개척하기 어려운 조선시대와 현대는 상황이 좀 다르다고 생각한다.

이덕무는 서자(庶子), 가난, 병약이라는 악조건을 책을 의지하여 이겨나갔다.
가난한 이덕무에게 책 읽는 일 말고 유일한 취미는 바로 윤회매(輪廻梅)를 만드는 일이었다. 윤회매란 밀랍으로 만든 매화를 말하는데, 말 그대로 돌고 돌아 윤회하여 된 매화라는 뜻이다. 벌이 꽃에서 꿀을 얻고, 그 꿀에서는 밀랍이 생기고, 그 밀랍으로 다시 매화를 만드는 것이 윤회의 과정 아니겠는가.

이덕무는 윤회매를 보면서 생각했다. 매화는 장차 자신이 꿀과 밀랍이 되리라 알 수 없고, 그 꿀과 밀랍이 다시 매화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걸 모른다. 세상사가 이렇듯, ‘이처럼 사람의 인생도 처음부터 하나로 정해진 게 아니라 살면서 다른 모습으로 바뀔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는 자신도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그 희망이 그를 모진 고통과 어려움에서 견딜 수 있게 했다. 자신의 삶도 묵묵히 이겨내면, 책과 함께 학식을 쌓아두다 보면 어느새 윤회매처럼 다른 모습으로 활짝 피는 날이 오기를.

세상에 나면서부터 인자하신 부모님과 부족하지 않은 경제력, 이렇게 편안한 가정을 만나는 사람도 있다. 반면, 스스로가 개척해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환경 속에 태어나는 사람도 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누구도 자신의 첫 운명을 선택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자신의 처음은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지만 그 다음부터는 어느 정도 가능한 것이 세상이다.

이덕무처럼 절망적인 악조건을 책과 견디면서 자신을 높여가면 기회가 온다. 물론, 서자 출신이 규장각 검서관이라는 벼슬에 오를 수 있는 것은 그의 능력만 가지고는 이룰 수 없는 일이다. 정조라는 열린 사고를 가진 군주와 서자도 학식이 갖춰지면 벼슬에 갈 수 있는 시대적 상황이 그에게는 다른 시대의 서자보다도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평범한 진리를 새겨봐야 한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오지만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사람은 준비하는 사람뿐이라는 진리를. 아무리 시대적 상황이 서자도 벼슬에 오를 수 있다고 한들 이덕무가 평소 간서치라는 말을 들으면서까지 책을 읽지 않았다면, 그리고 학문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면 그에게 벼슬은 여전히 요원한 일일 뿐이었을 것이다. 윤회매를 만드는 동안 자신의 삶도 다시 활짝 피어오를 날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잃지 않고 그 희망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 열심히 책을 읽고 노력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2010년도 어느새 한 달을 채워가고 있다. 백호의 해라면서 사람들은 2010년 경인년을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것이라는 희망을 갖는다. 하지만 자신이 세운 계획을 실천하고 담금질 할 때 좋은 일은 나에게 오는 법이다. 백호가 지켜주는 올 한 해는 이덕무를 벗 삼아 자신의 처지를 개선하려는 의지와 잘 될 수 있다는 희망과 그런 가르침을 주는 책을 가까이 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