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08.03.24 09:05

애국의 총탄 장인환, 전명운 의거 100주년을 기리며


대한민국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국민의 염원 아래 들어선 이명박 정부와 함께 국민의 염원을 실현할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가 다음달 4월 9일에 있다.
어떤 국회의원을 뽑는 것이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배를 바다로 이끌어 갈지, 산으로 이끌어 갈지 결정하는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니 참으로 중요한 일인 것이다.
경제 발전을 통해 대한민국이라는 배가 바다를 향해 순항하기 위해 더더욱 필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나라사랑이라는 영혼의 등대라 할 것이다.    
지금부터 정확히 100년 전 대한민국 영혼의 등대가 되기에 충분한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장인환, 전명운 의거다.
지금부터 100년 전 1908년 3월 23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페리 정거장에서 세 발의 총성이 울렸다. 삼천만 민족의 울분을 가슴에 안은 젊은 애국청년 장인환과 전명운이 쏘아올린 총성이었다.
그 세 발의 총성에 쓰러진 이는 한국 정부의 외교 고문이던 스티븐즈였다. 친일파로서 일본의 을사보호조약 체결 등을 위해서 일해 온 그는 1908년 3월 21일 워싱턴으로 가던 중 샌프란시스코에 들러 현지 신문에 일본의 한국 침략 정책을 찬양하는 발언을 했다.
이에 한인공립협회 등 샌프란시스코 거주 한인들은 합동으로 대책모임을 갖고 스티븐즈의 망언을 규탄하고 정정을 요구했지만 스티븐즈는 반성의 빛도 없이 정정에 반대를 하는 등 삼천만 우리 민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스티븐즈가 우리 민족의 가슴에 박은 대못은 젊은 애국청년 장인환과 전명운에 의해 총탄이 되어 그의 가슴에 박혀 3일 후 사망하기에 이른다.
장인환, 전명운 의사의 의열 투쟁은 미주 내에서 일어난 첫 무력 항일투쟁이었고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일본의 한국 합병의 부당성을 전 세계에 알린 뜻 깊은 의열 투쟁이었다.
장인환, 전명운 의사의 의열 투쟁이 있은 지 100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은 새로운 기로에 서있다. 우리 국민 모두가 애국청년 장인환과 전명운의 나라사랑 정신을 마음에 새겨 영혼의 등대로 삼을 때 대한민국이라는 배가 바다를 향해 순항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