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08.03.24 09:05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피눈물



우리는 얼마 전 3·1절 89주년 기념행사를 가진 바 있다.
주권을 빼앗긴 민족이 이 세상에서 얼마나 비참하고 불쌍한 처지의 존재인가를 뼈저리게 느끼면서 목숨을 내걸고 독립을 하려 했던 조상들의 거룩한 정신을 되살리고자 다짐과 각오를 새롭게 했다.
그리고 금년은 대한민국이 독립국으로 떳떳하게 건국 된지 6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나라의 해방과 독립을 위해 천하보다 귀한 생명과 재산을 송두리째 바치고 머나 먼 타국에서 숨져간 독립유공자 후손들은 꿈에도 그리던 고국에서 조차 ‘찬밥’ 신세로 또 다시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가난과 질시에 시달리면서도 자랑스러운 조상의 발자취만을 생각하며 천신만고 끝에 고국에 돌아와 국적회복을 신청해도 싸늘하기만 한 정부의 반응과 잠재적 범죄인 취급하듯 대하는 것을 보면 그저 억장이 무너지고 가슴이 답답할 뿐이다.
그 동안 국적회복 신청을 한 독립유공자 후손 중에서 아직도 귀화허가를 받지 못한 사람이 절반에 이르고 있고 우리 정부로부터 소식만 기다리다가 지쳐서 자기가 살던 곳으로 되돌아가거나 본의 아니게 불법체류자로 전락해 쫓기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조국의 해방과 독립을 위해 중국의 만주지역과 구 러시아 연해주지방을 떠돌던 그들의 조상들과 마찬가지로 이국땅과 고국에서조차 차가운 의심의 눈총을 받으면서 기약 없이 유랑하고 있는 처지가 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국가보훈처가 국회 정무위원회 김정훈 의원(한나라당)에 제출한 ‘독립유공자 영주귀국(국적회복) 심사현황’ 자료에 따르면 영주귀국제도가 생겨난 지난 1990년부터 지난해까지 국적회복을 신청한 1,214명 가운데 55.8%인 677명만이 허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신청 후 대기 중인 독립유공자 후손은 현재 120명에 이르고 있는데 이들에 대한 관리 상태는 말 그대로 완전 방치상태에 가까울 정도여서 미쳐 허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은 비자연장이 되지 않아 대부분 살던 곳으로 되돌아갔거나 일부는 불법체류자 신세로 전락한 상태이다.
필자는 지난 1996년부터 중국 흑룡강성 목단강시에 살고 있던 독립군 사령관 백야 김좌진 장군의 친 따님인 고(故) 김강석 여사를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되어 그들 가족과 지금까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 유명한 청산리전투의 영웅 김좌진 장군이 1927년 봄 대한독립단 사령관으로 있을 때 상해 임시정부 특파원의 보증과 대한 독립단 8노들의 주선으로 결혼식을 올렸던 두 번째 아내인 김영숙으로부터 낳은 김강석은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생모를 일제주구의 칼날에 잃고 핏덩어리로 산속에 버려졌다가 독립군들에 의해 발견돼 겨우 생명을 부지할 수 있었던 비운의 주인공으로 중국 땅에서 65년 동안을 살아왔었다.
지난 1995년 8월 뒤늦게 대한민국 정부의 초청을 받아 청와대를 방문하게 되어 당시 김영삼 대통령으로부터 격려를 받고서야 처음으로 아버지의 이름을 목 놓아 불러볼 수가 있었다.
그러나 2003년 9월 14일, 75세를 일기로 한 많은 세상을 지병인 관절염과 유방암으로 인해 외롭고 쓸쓸하게 중국 땅에서 눈을 감았고 무남독녀 외동딸 위연홍(58)과 외손녀 김휘(22)만 천애고아가 되어 남게 된 것이다.
장군의 외손녀 위연홍은 홀로 계신 어머니조차 잃고 아무 연고나 친척도 없는 중국에서의 생활을 접고 한국에 돌아와 외할아버지의 고향인 따뜻한 남쪽나라에서 살고 싶다며 2006년 8월 법무부에 국적회복 신청을 해 놓고 2년 가까이 기다렸으나 최근 증거자료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불허판정을 받고 다시 한 번 통한의 피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국가보훈처에서 요구하는 증빙서류는 호적제도가 없는 중국에서는 입증할 수 없는 서류들이 대부분이어서 당사자로서는 답답하기 그지없는 실정이다.
위연홍 씨 경우에는 이미 독립유공자 후손 자격으로 대한민국 정부의 초청을 받아 두 번씩이나 청와대를 다녀간 적이 있고 중국 현지에서 그의 어머니의 일생을 다룬 <장군의 딸>이라는 인물 전기를 비롯해 역사 관련 책자에 수차례 자세히 언급되었다.
또 국내·외 신문·방송에서도 수 없이 보도된 바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저 입증자료의 부족이라며 불허 판정을 내린 국가보훈처의 처사를 이해 할 수가 없다.
행정편의로 얼룩진 심사기준에 또 다시 피눈물을 흘리는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쓰라린 가슴을 누가 달래주고 씻어 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