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12.14 10:40

우리 고장의 이름은 함평(咸平)이다. 조선시대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풍현과 모현이 합쳐지면서 새로운 지명이 나왔음은 익히 아는 사실이다. 조선 후기 이서구(1754~1825)는 그의 나이 66세 즈음 두 번째 전라 관찰사로 부임하여 관내 54개 군현(郡縣)을 자주 순찰하며 민심을 살피고 군정을 펼쳤는데 그때의 느낌을 시상(詩想) 적었고 이것이 후일 판소리 호남가로 발전한다.

 

이서구(李書九)란 이름은 서전(書傳)’ 서문(序文)을 구천독(九千讀)하여 서구(書九)’로 지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독서와 세상 이치에 밝았고 연암 박지원 문하에서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등과 함께 조선 후기의 실학 사대가(實學四大家), 시문 사대가(詩文四大家)를 가리키는 사대시인으로 명성을 얻었으며 역학, 풍수, 천문, 지리에 조예가 깊어 예언이나 비보로서 기행을 남긴 이인이고 기인이었다.

 

이서구는 정조와 순조 때 즉 40대 초반과 60대 후반 두 번이나 전라 관찰사를 지낸 덕분에 호남에 많은 일화를 남겼다. 한번은 관내 땅을 순찰하던 중 고창 선운사 마애불의 복부에 있는 감실(龕室)속에 세상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비결서가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된다.

 

그 길로 선운사로 달려간 이서구는 마애불상에 사다리를 놓고 복장감실을 열어보는데 정말 책이 한권 있었다. 이서구는 책을 꺼내어 그 첫장을 펼쳐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라는데 때마침 날벼락이 치므로 얼른 책을 다시 넣고 줄행랑을 쳤다고 한다. 그 책의 첫장엔 이서구개탁(李書九開坼) 이서구가 꺼내 볼 것이다라고 되어 있었다.

 

서화담-이토정-이서구-이운규-김일부로 이어지는 조선조 유가(儒家) 도맥(道脈)은 이후 최제우의 동학, 강증산의 증산교, 박중빈의 원불교 등 민족종교 정신사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호남가를 보면 이서구는 자신을 함평천지 늙은 몸으로 의인화 하여 각 지역의 특성을 설명했는데 왜 함평을 자신과 동일시 했을까? 함평은 모두가 평등한 수평(水平)적 세계관의 상징이고 천지(天地)는 하늘과 땅이 서있는 수직(垂直)적 세계관의 상징이다. 수평과 수직이 만나면 열십()자가 된다.

 

()은 만남을 의미하고 완성을 뜻한다. 가로와 세로가 만나고 하늘과 땅이 만나고 물과 불이 만나고 남자와 여자가 만난다. 좌와 우가 만나고 물질과 정신이 만난다. 가난한 사람과 부자인 사람이 만나 을 통해 완전함을 이루고 하나로 통합되는 곳이 함평 천지이며 그 상징적인 존재로 이서구는 늙은 몸으로 표현하였다. 늙음은 익는것의 또 다른 말이다. 익어야 맛이 있고 익어야 탈이 없고 익어야 겸손해진다.

 

함평 천지의 십()은 좌와 우, 평등과 자유가 교차하는 지점이면서 바로 우리 한반도를 의미한다.

 

한반도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반반씩 접해있다. 육지이면서 바다이고 바다이면서 육지이다. 대륙의 시작이면서 또한 바다의 시작이다. 대륙의 상징이 러시아라면 바다의 상징은 태평양과 대서양을 마주한 미국이다. 볼세비키 혁명을 통해 러시아가 공산 사회주의 종주국이 되었다가 체제 경쟁에서 미국에 밀렸지만 중국이라는 새로운 사회주의 신흥강자가 미국의 신자본주의 패권국과 맞서고 있다.

 

이서구는 호남가에서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 예언가 이서구는 우리가 간직한 밝은빛(광주 고향)이 주변의 도움을 받아 성장하여(제주 어선 빌려타고) 우리들의 일등 교역국으로 동남아시아( 바다의 남쪽 해남)가 뜨고 이를 기반으로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제일가는 정신의 지도국 도덕의 부모국’ (흥양에 돋는 해)이 되어 주변국가들과 화합하여 평화로운 선진국으로 이끌게(보성에 비쳐있고) 될 것을 말하고 있다.

 

이서구는 함평과 호남가를 통해 우리들에게 비전을 심어주었고 지금도 늙은 몸으로서 함평천지를 계속 실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