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07.03.10 11:02

다시 새겨보는 3ㆍ1절




 3·1운동은 우리 민족사에서 일제 지배에 항거하고 민족의 독립을 성취하기 위한 거국적 국민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1910년 일본에 합병 당한 대한제국은 역사의 맥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일본의 조선총독부 통치를 받게 된다.


 일본 제국주의의 통치와 침략에 항거하고 민족의 자존을 세우기 위한 민족 부흥운동은 항일독립투쟁으로 이어져 민족대표 33인을 기치로 전국 각지에서 독립만세 운동을 일으켰다.


 이에 일본은 이를 진압하기 위하여 헌병경찰을 동원해  항일독립투사들을 학살, 투옥함은 물론 일체의 결사와 언론활동을 금지시키고 민족의식의 성장을 억누르며 유관순 열사로 대표되는 민족적 결사와 항거를 짓밟고 말았다.


 한편 국권침탈 이 후 일본의 폭압통치는 지식인 학생 종교인뿐만 아니라 농민 근로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국민의 반일 감정을 자극하게 되었다.


 한국이 일본의 무단정치를 겪고 있을 무렵 민족자결의 원칙을 제창하게 되고 이는 핍박을 받고 있는 민족들에게 새로운 자극제로 작용하게 됐다. 이 민족자결주의 원칙이 항일 독립운동을 해 오던 독립 운동가들에게 새로운 모티브를 제공하게 된다.


 이 같은 환경 속에서 1919년 1월 21일 고종황제가 갑자기 승하하게 되자 일본인들에 의한 독살설이 유포되어 일본에 대한 우리민족의 증오가 극에 달하게 되면서 독립운동의 도화선이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