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07.02.01 20:00



 원효대사((617-686))는 지금의 경북 경산군 자인 지방인 압량군 불지촌(현 경산군 압량면 신월동으로 추측)에서 태어났으며 세속에서의 성은 설(薛)씨였다. 그는 특별히 한 스승을 정하지 않고 자유로운 상태에서 널리 배움을 구하였다고 한다.


 29세에 출가한 원효는 따로 스승을 두지 않고 닥치는 대로 불전을 얻어 읽느라 밤을 새웠다. 이런 생활이 4년쯤에 접어들 무렵, 원효는 입당하고자 의상과 함께 길을 떠나게 됐다.


 날이 어두워 어둠 속을 헤매던 원효는 움집에 들어가 잠을 청했는데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심한 갈증을 느끼고 눈을 떴다.


 구름에 달이 가려 앞은 칠흑 같았다. 방안을 더듬어 보니 뜻밖에 냉수가 담긴 바가지가 하나가 있었고 바가지의 물을 마시자 갈증은 삽시간에 가셨다. 잊을 수 없는 물맛이었다.


 그러나 아침이 되자 간밤에 그토록 달콤했던 물이 해골바가지에 담긴 썩은 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 원효는 갑자기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오장이 뒤틀리는 가운데 원효의 뇌리를 번개처럼 스치는 것이 있었다.


 “외물(外物) 그 자체는 호불호(好不好) 선불선(善不善)이 없는 것임을! 다만 나의 마음에 달렸음을!” 원효는 의상을 뒤에 두고 미련 없이 고향 길로 되돌아갔다.


 당시 불교에 귀의한 사람은 누구나 당에 건너가 고승 밑에서 공부하려 하였다. 이는 귀국 후 여러 가지가 보장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