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07.01.09 16:03

송병선(宋秉璿) 선생(1836. 8. 24 ~ 1905. 12. 30)

1. 선정배경
충남 회덕에서 조선 유학의  대가인 송시열의 9대 손으로 태어난 선생은 출중한 성리학자이자 민족 지성이었다.
누대에 걸쳐 가학으로 성립된 성리학의 의리 사상을 이어 받고 이를 기반으로 서세동점과 일제침략의 위기상황
을 극복하려고 온 힘을 기울였다.
의리 사상에 입각하여 저술된 선조들의 문집을 편찬하여 보급하고 위정척사 사상을 정립하여 널리 전파함으로써 외세에 대한 사상적 무장에 적극 힘썼다. 이와 함께 전국 각지를 순례하며 동지들을 찾아 교유하고 제자들을 양성하며 장차 국권회복 운동의 인적 기반을 쌓아 갔다.
특히 개항 이후 20여 차례의 상소를 통해 무분별한 개화정책을 비판하며 내수 정비와 군사력 배양의 부국강병
책을 제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05년 일제에 의해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선생은 조약 파기와 을사 5적의 처단을 주장하는 상소 투쟁을 벌였다.
나아가 이런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상경한 뒤 국왕의 면담을 요구하며 농성하자 일제는 선생을 향리로 강제로
귀가 조치하였다. 이렇게 되자 선생은 자결, 순국함으로써 일제의 국권침탈에 대해 강력한 저항의지를 표출하고 민족의 국권회복 의지에 불을 지폈다.
이러한 선생의 독립운동 공훈과 탄신 170주기를 기리어 선정하게 됐다.


2. 주요공적
○ 1876년 개항 이후 여러 차례 상소를 통해 1904년 까지 왜세(倭勢) 척결 주장
○ 1905년 을사조약 파기와 5적 처단 투쟁
○ 1905. 12. 30 을사조약 반대 자결, 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