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04.04.30 10:02

고씨(高氏)

고씨는 원래 탐라(耽羅, 제주)의 지배 씨족으로 고, 양(良), 부(夫) 3성의 시조는 한라산 북쪽 기슭의 모흥혈(毛興穴)에서 솟아 나왔다는 전설이 있다. 삼성혈에서 나온 고을라(高乙那)가 고씨의 근원이므로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고 발상지인 제주를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으나 후손이 번창함에 따라 세거지(世居地) 또는 조상의 작호(爵號)에 따라 분적되었는데 1985. 11. 1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에서 조사한 자료에 의하여 38 본으로 전국에 91,402 가호384,061명이 살고 있어 전국 성씨 중 22위를 차지하고 있다.

300가호가 넘는 본은 제주(75,910호), 장흥(9,877호), 개성(2,079호), 장택(840호), 횡성(786호), 창평(352호), 청주(324호) 7개 본이다.

함평군에는 1969년 군 자체 조사에서는 장흥(83호), 제주(59호), 장택(15호), 평택(11호)의 4개 본이었으나 1985년 조사에서는 제주(99호), 장택(15호), 평택(11호)의 4개 본이었으나 1985년 조사에서는 제주(99호), 장흥(33호) 2개 본으로 줄었고 그간 많은 가호가 도시롤 떠났는 데도 제주 고씨가 거의 배에 가깝게 늘었다.

이는 용담(龍潭), 옥구(沃溝), 횡성(橫城), 담양(潭陽), 의령(宜寧), 고봉(高峰), 금화(金化), 토산(兎山), 회령(會寧), 평택(平澤), 장택(長澤)등의 여러 본이 같은 혈손이라는 신념에서 단합하여 고을라를 도시조로 하는 제주고씨로 환적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본다.

참고로 문헌에 의해 고씨의 본관을 살펴 보면, 시조 을라의 45세손 자견왕(自堅王)의 태자 말로(末老)는 제주고씨를 계승하였고, 말로의 증손 공익(恭益)은 청주고씨, 말로의 증손 영신(令臣)은 개성고씨, 말로의 후손 종필(宗弼)은 연안고씨, 말로의 10세손 복림(福林)은 장흥고씨, 말로의 16세손 응섭(應涉)은 안동고씨로 분적했다.

■장흥고씨(長興高氏)

시조는 복림(福林)이다. 그는 시조의 45세손인 자견왕(自堅王)의 태자 말로(末老)의 10세손이며 장흥(長興, 본래 장택-長澤)에 세거하였기 때문에 후손들이 장흥을 본관으로 하였다.

함평에 처음 입향한 선조는 시조의 27세손 시원(時元)으로 1680년경 무안에서 엄다면 신로동(新老洞, 현 송로리)에 이주 정착했다.

그의 아들 후진( 鎭)이 대동면 백호리 보화촌으로, 손자 제수(濟壽)가 학교면 석정리로 이주하여 군내에 퍼져 살게 되었으며 집단촌은 석정리다.

■제주고씨

1895. 11. 1 경제기획원 조사동계국 조사 자료에 따르면 함평군에 99가호 391명이 살고 있어 본관별 씨족 거주 순위 41위를 차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