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06.03.12 14:05

민들레 함부러 꺽지 마라


 

지난해부터 필자는 주말이 오히려 평일 보다 더 번거로워졌다. 아내의 일터가 아주 먼곳으로 옮겨지며 필자 혼자 가족과 떨어져 덩그라니 광주에 살고 있는 까닭에, 맞벌이 부부 행세를 하느라 주말이면 버스 터미널로 줄달음치느라 정신이 없다.

 또 그렇게 서너 시간을 고속도로를 달려 집에 간들 편하게 쉴 새가 없다. 오랜만에 아빠를 만난 아이들이 허리춤을 잡고 놓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이 주말이지 낮잠 한번을 늘어지게 잘 틈이 없다.


 초등학교에서 한달에 한 두 차례 토요일을 가정학습의 날로 정한 두 달 전부터 매월 마지막 토요일은 더더욱 힘겨운 주말이 돼버렸다. 과학탐구니 자연탐구니…하는 과제에 따라 필시 어디론가 한나절 외출을 해야 하는 까닭이다. 다녀와선 레포트 비슷한 것을 학교에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 어정쩡 뭉갤 수도 없는 주말 일과가 되다시피 했다.


 지난 주말에는 아이를 데리고 과천 현대미술관에 다녀왔다. 물론 아이나 필자나 여지없는 불량 관람객. 밤늦게 집에 도착해 새벽같이 집을 나선 필자는 눈가에 잠이 주렁주렁 매달 린 채 미술관을 유령처럼 어슬렁거렸고,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에 핫도그에 솜 과자 등등 미술관 안팎에서 파는 먹거리에 우선 정신이 팔려 미술관은 관심 밖이었다.


 배불리 먹고 해찰을 원 없이 한 후에야 아이들은 그림을 한번 보자 했다. 초장의 자세는 그렇듯 불온했지만 관람은 유익했다. 때마침 초등학생들을 위한 특별전이 마련돼 있었고, 중국 현대미술 특별전이라는 것도 열려 아이들에게나 필자에게나 볼거리가 심심찮았던 까닭이다.


 잠시 피곤을 잊고 다리를 혹사했더니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잠이 쏟아졌다. 아이들도 데쳐진 배추가닥처럼 늘어져버렸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애써 잠을 청하다가 문득 부모 없는 애들은 혹은 주말에도 뼈 빠지게 일을 해야 하는 부모를 둔 아이들은 가정학습의 날을 어떻게 보내는지 궁금해졌다. 


 잠이 달아나며 마음이 우울하게 가라앉았다. 형편이 안되는 부모나 애들에 대한 제도적 대책도 없이 외국의 주말학습을 흉내 내는 교육당국이 불쑥 밉살스럽기까지 했다. 왜들 그렇게 사회적 약자나 소외계층에 대한 이해가 못 미치는지. 더구나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공공의 제도를 시행하면서.


 아니나 다를까 버스에서 내려 집에 오르는 골목길 모퉁이에 있는 작은 놀이터를 보니까 몇몇 아이들이 외롭게 그네를 타며 놀고 있었다. 훌렁훌렁 허공을 가르는 그네 짓이 유난히 쓸쓸해 보였다.


 괜한 상심이 생겨 저절로 발이 더뎌진 필자 보다 몇 발자국 앞서 가던 아이가 갑자기 허리를 구부려 무엇인가를 꺾어 드는 게 보였다. 메마른 보도 블록 사이를 비집고 어렵게 고개를 내민 노란 민들레꽃이다. 참 대견하다. 생명은 그렇게 모질고 경이롭다. 어디서 작은 풀씨로 날아와 그 척박한 보도블록 틈에서 샛노란 꽃을 피워 내다니.


 필자가 문득 아이를 다그쳤다.


 민들레 꺾지 마라!


 왜?  


 너무 어렵게 꽃을 피웠잖아. 불쌍하지 않니?


 아이가 가만히 꽃을 놓고 허리를 폈다.


 그래, 온실에서 핀 민들레나 보도블록 사이에서 핀 민들레나 꽃은 다 아름다울 것이다.       


      


              &n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