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01.09.19 17:05
민주당이 근본적인 정치개혁을 추진한다고 한다. 환영할만한 일이다. 정치 개혁가운데 하나가 내년 6월 지방선거에 대비한 선거법 개정이다. 그 중에 중요한 것이 지방선거의 정당공천제 폐지이다.

얼마 전 전국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가 여론 조사기관인 리서치 앤 리서치에 의뢰해 일반인집단과 교수․공무원․언론인 등 전문가집단으로 나눠 실시한 ‘기초자치단체장 정당공천제도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일반인은 절반이 조금 넘은 54.6%가, 전문가는 77.3%가 반대했다.

전문가는 공천제 반대 이유로 “지방자치는 정치 색이 없는 생활정치가 돼야 하기 때문”(68.3%)을 내세웠다. 정당공천제 폐지에 대한 대안으로는 ‘지역 주민에 의한 추천제’(일반인 68.9%, 전문가42.4%)를 가장 선호했다.

지난 10년간 지방자치를 실시하면서 제기된 문제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정당공천제의 폐해가 매우 심각해, 지방선거는 정당공천제로 인해 돈 많이 쓰는 선거로 전락했다. 그 동안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을 여러 차례개정 하면서 “돈을 묶고, 입은 푼다”는 선거원칙을 입법화 해 왔기 때문에 선거운동에는 비교적 돈이 적게 든다.

반면 기초 단체장과 지방의원 지망생들이 공천을 받기 위해 그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하는데는 많은 돈이 들어간다. 지난 98년 6월 전국동시 지방선거 때 자치단체장공천 헌금 액은 지역에 따라 적게는 2억원에서 많게는 20억원이었다는 설이 있다.

시장․군수․구청장의 연봉이 4천3백만원이므로 4년 동안 한푼도 안 쓰고 모두 모아도 1억7천2백만원 밖에 안 되는데 단체장들이 무슨 돈으로 공천헌금을 냈는지 모를 일이다. 이런 지방선거의 정당공천제가 단체장을 업자와 결탁하도록 내몰거나 각종 인․허가 등 이권에 폭넓게 개입, 부정을 저지르게 만들고 있다.

지역구 국회의원은 이 돈을 가지고 다음 총선에서 국회의원 공천을 따내기 위해 중앙당 총재와 실세들에게 정치자금을 바쳐야 한다. 따라서 지방선거의 정당공천제는 부정하게 정치자금을 조성하는 연결고리가 돼 있다.

그러므로 부패한 중앙정치로부터 지방자치를 보호하고 “돈 적게 쓰는 지방선거,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깨끗한 자치”를 구현하려면 지방선거에 있어 정당공천의 올가미를 벗겨버려야 한다.

오늘날 정당공천제로 인해 ‘주민자치’는 퇴색하고 ‘정당자치’로 변질됐으며, 지방자치단체는 지구당 국회의원과 중앙당에 예속됐다.

지난 98년 지방선거가 끝난 뒤 지방의회의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정당의 국회의원들은 소속 지방의원들에게 “某(모) 의원을 의장, 상임위원장으로 각각 선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또한 당정협의회를 한다면서 단체장과 당 소속 지방의원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지시를 내렸다.

국회의원들이 민선 지방의원과 단체장들을 자기의 부하쯤으로 여기고 자치단체를 여당의 하급기관으로 착각, 무식한 행동을 자행한 것이다. “주민에 의한 주민의 자치”‘는 사라지고 “정당에 의한 정당의 자치, 정당의 지방지배” 만이 있을 뿐이다.

정당공천제 폐지에 반대하는 세력은 주로 국회의원과 정당의 기득권세력이다.

중앙당은 정당공천제로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지배를 더욱 강화하려고 하고 있으며, 국회의원들은 정당공천제를 무기로 지방단체장과 지방의원을 먹이사슬로 삼아 정치자금을 거둬들이는 한편, 그들을 손아귀에 장악하고 있다. 그러므로 국회의원들의 자치단체 지배와 횡포를 근원적으로 차단하고 지방자치를 주민에게 돌려주기 위해 정당공천제는 폐지 돼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주민자치를 실현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윤종채 편집부국장 대우 정치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