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02.03.18 17:04

함평신문으로 고향의 향수를 달래며!

몇 년 전 어느 날 갑자기. 퇴근 후 집(서울)에 들어와 보니 웬 낯선 한 통의 신문이 배달되

어 있었다. 뜯어보니 '함평신문'이었다.

언제 이런 신문도 있었나? 신청한 적도 없는데... 이 먼 곳까지 누가 배달해 주었을까? 이

것저것 궁금증이 가시지 않은 가운데 만사를 제치고 첫 페이지부터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알 듯 모를 듯 많은 고향 분들의 모습과 이름이 오르내렸고 언제 가봐도 정겨운 고향 땅에

서 일어나는 작고 큰 기사들 때문에 한 순간도 나의 눈을 신문에서 뗄 수가 없었다. 신문을

읽는 동안 약 40년 전에 떠난 나의 고향 하늘 아래 파묻혀 있는 것 같았다.

얼마쯤 지났을까? 또다시 신문이 도착되었다. 누군 지는 모르지만 정말 고마웠다. 몇 달째

우송돼 왔지만 그 누구 한 사람 구독료를 요구하는 사람이 없었다.

운영자금은 어떻게 충당(?)하고 있기에... '함평신문사'로 직접 전화를 걸었다. 구독료를 물

었고 계좌번호를 얻어 내 다음날 온라인으로 입금시켜 드렸다.

직장이나 집에서도 몇 개의 신문을 보고 있지만 나에게 관심 있는 기사 몇 면만 대충 ?어

보는게 전부다. 하지만 우리 고장 소식을 낱낱이 전해주는 '함평신문' 만큼은 한 면도 빼 놓

을 수가 없다.

나의 뿌리가 거기에 있고 조상 님들이 그곳에서 말없이 고향 땅 지키고 계시기에, 난 그

어떤 곳보다 내 고향 사랑하고 있다. 산소를 참배코자 고작해야 1년에 한 두 번 정도 잠깐

다녀오는 것이 고작이지만 마음은 항상 고향 하늘을 그리고 있다.

잠시라도 나의 짙은 향수를 달래주고 위로해 줄 수 있는 시간은 유일하게 '함평신문'을 읽

는 순간이기에 나는 그 어떤 신문보다도 더욱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되돌아보면, 도로 한곳 제대로 뚫린 곳 없이 첩첩산중으로 둘려 쌓여 보잘 것 없었던 내

고장(손불)에서 동네 말썽꾸러기로 자라다가 어느 땐가 정신차릴(?) 기회가 있어 밤낮 없이

책과 씨름한 결과, 고향 마을에서 처음 은행문턱을 두들기게 됐다.

자식자랑 하고 싶은 선친께서 동네사람 불러놓고 소 등을 타고 두둥실 어깨춤을 추시던 시

절이 엊그제 같은데 어언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내 고향 하늘은 그립기만 하다.

어쩌다 이곳에서 고향 사람들을 만나면 예전에 못 느끼던 반가움에 사로잡힌다.

이제 우리 '함평천지'는 세계적인 축제인 '나비축제'의 고향이며 가는 곳곳마다 시원한 도로

망이 뚫려있고, 더욱이 서해안고속도로까지 통과하고 있다.

근래에는 국내 유일의 골프고등학교까지 개교하였고 머지않아 골프장도 건설될 계획이라니

이것은 우리 '함평인'의 긍지며 자랑거리이고, 이제 '함평천지'가 문화 스포츠 등의 관광지로

발돋움하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여겨진다.

어쩌다 한번 다녀오는 고향이지만 떠나고 싶지 않은 내 고장 '함평'.

이 모든 실상의 가교역할을 해주고 있는, 우리 고장 발전을 위해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는

유일한 고향신문 '함평신문'의 은혜에 무한한 감사와 찬사를 보냄과 아울러 더욱 발전하길

기원하면서, '함평천지 파이팅'을 다시 한번 크게 외쳐본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 임 채 옥

제일은행 남대문 지점장(전)

제일은행 본점 CS Center Business Manager(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