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02.03.12 17:04

전설 속의 천년가람 용천사

용천사는 해보면 광암리 모악산 자락에 위치한다. 전통사찰 제45호로 지정되었고 조계종 소속 백양사의 말사이다.

신라 행사존사(幸師尊思)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창건 당시에는 영광 불갑사와 함께 서해안 지역에서 대표적인 큰 사찰로 사천왕전(15평)은 전국 최대의 규모였고 천불을 보존하였다고 한다.

사찰 앞에 작은 샘이 있는데 이곳에서 용이 승천하였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와 용천(龍泉) 이라 했으며 절의 이름 또한 용천사라 지었다고 한다.

1910년 3월 31일 간행된『증보교정조선사찰사료』에 실린〈대웅전단청기(1705)〉에 의하면 용천사는 "당 현종조(唐玄宗朝(713-756)), 즉 통일신라 8세기 중반 경에 창건되었으며 정유재란 때 병화를 당한 후 1632년(인조 10)에 대웅전을 중창, 그로부터 6년 후인 1638년(인조16)에 쌍연(雙衍), 개연(慨然) 두 스님이 발심하여 부속건물을 새로 짓고 단청을 완료했다. 그 후 1705년(숙종31)에 다시 한번 중창의 손길이 미쳤으며 영암 출신 자운(慈雲)선사(1817-?)가 19세기 후반에 퇴락한 건물을 중수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기록들은 현재 용천사 내에 소재하고 있는 각종 유물에 적힌 명문에 의해서도 증명되고 있다. 예를 들면 1685년에 만들어진 석등과 1688년의 괘불석주, 그리고 회백당 대사의 부도가 1692년에 만들어진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기록을 살펴보면 용천사는 정유재란의 피해를 당한 후 약 100년이 지난 뒤인 17세기 후반에서 19세기 후반 사이에 대규모의 사찰로 발전했던 것으로 보인다.

근년에 접어들어서는 한국전쟁시 전소 당한 후 한동안 복구작업이 이루어지지 않다가 1964년 금당(錦堂)스님이 대웅전(약10평)을 복원했고 1984년 박상철 스님에 의해 요사채(21평)가 건립되었다. 1988년 7월 27일자 전통사찰로 등록되고 1994년 대웅전을 재 건립했다.

용천사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석탑과 석등이 있으며 그 외 괘불석주가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 후기에는 상당한 규모의 가람을 갖추었던 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인 팔작 지붕이며 부연을 설치한 겹처마 집이다. 대웅전 우측(향좌)에 있는 요사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전퇴를 둔 팔작집이다. 또 하나의 요사채는 대웅전과 일직선상의 우측(향좌)에 있는데 소규모의 민가형태의 건물이다.

8월이면 천년가람 용천사와 함께 한국자연 100경 가운데 하나인 모악산 자락에서 자생하는 불타는 듯한 상사화의 꽃망울을 감상할 수 있다. 여기에 사찰을 찾아오는 손님에게 차 한잔 권하는 따사로운 인심마저 남아 있는 곳이다.

용천사에는 목조여래좌상 석등 석탑 부도군 괘불석주 석주 해시계가 있는데 이 중에서 해시계는 6·25때 절이 불탄 후 유실되었으나 1980년경 사찰 내 흙더미 속에서 한쪽이 깨어진 채로 발견되었다.

현 상태는 방형의 석재를 윗면과 측면을 고르게 다듬고 그 중앙에 구멍을 뚫었으며 그 구멍을 중심 축으로 하여 12시 방향을 음각으로 표시하였다. 남아 있는 12시 방향의 음각명문에는 묘(卯)·진(辰)·사(巳)·오(午)·미(未)·신(申)·유(酉)의 7자가 새겨져 있다. 이들 12간지는 새벽 이후부터 오후에 해당되는 시간(묘시∼유시)으로 깨진 밤 쪽은 밤 시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석질이 같은 경내에 있는 석등과 같은 점으로 보아 조성 연대는 석등이 만들어진 연대인 1688년(숙종11) 전후로 추정된다. 선인들의 시간 관측술을 알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옛길 따라 지명 따라



용호 마을의 전설

학교면 소재지에서 6km 쯤 지나 영산강 변에 이르면 영산포에서 학교면 석정리 고막천에 이르는 배야 마을을 안고 흐르는 곡강이 있다. 신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이 곡강은 고려 때 강이 지세에 등져 흐르는 3대 강의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이 강의 배류지에는 용호리라는 유서 깊은 강촌 마을이 평화롭게 자리하고 있다. 뒤로는 산명 수려한 속금산이 그 위풍을 자랑하고 강 건너 서쪽에는 고문산이 우뚝 솟아 있다.

고문산은 예로부터 사람이 하나 들어갈 만한 굴이 뚫려져 있었다고 한다. 굴의 길이는 몽탄강에 이르며 먼 옛날 이 굴에는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 지상으로 내려온 백년 묵은 이무기 한 쌍이 살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비가 오면 굴 앞 강변은 호수로 변했고 본래 용이었던 부부 이무기는 이 호수에 나와 목욕 재계하고 다시 용이 되기를 옥황상제께 빌었다고 한다. 그 정성이 지극하여 마침내 옥황상제의 윤허를 얻어 하늘로 승천하기에 이르렀다.

우레가 번득이고 소낙비가 쏟아지는 어느 날 수컷 이무기는 먼저 하늘로 승천을 했으나 암컷 이무기는 승천을 하고 있을 무렵 마을의 부정한 여인이 이 장면을 목격하고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그만 승천하지 못한 채 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