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02.03.12 17:04

김철수 (아동문학가, 미 솔로몬대 교수)



옛날 독일에 듀우라아와 한스라는 소년이 한 마을에 살고 있었다.

둘 이는 친형제보다도 더 절친한 사이였고 서로를 아끼고 생각하는데는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지극했다. 그런데 두 소년은 똑같이 예술에 재능이 풍부했는데 장차 훌륭한 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이 두소년의 가정은 너무나 가난했기 때문에 자기 둘의 꿈을 이룰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어느 날 두 소년은 머리를 맞대고 장래의 일에 대해 진지한 의견을 나누게 되었는데 한스가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듀우라아야, 네가 먼저 이태리에 가서 그림공부를 하도록 해라. 내가 노동을 해서라도 네 뒷바라지를 해줄게. 그리고 너의 공부가 끝나면 다음은 내가 공부를 하고 너는 내 뒷바라지를 해주는 거야."

이러한 한스의 제안에 듀우라아는 승낙을 하고 예술의 도시 이태리로 미술공부를 하기 위해 떠났고, 한스는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힘에 겨운 대장간 일을 하면서 친구 듀우라아의 학자금을 차질 없이 송금해 주었다.

이 정성어린 한스의 장학금을 받아 공부에 매달렸던 듀우라아는 얼마 후 일류 화가가 되어 금의환향을 하게 되었고, 제일 먼저 자기를 위해 힘들고 궂은 일을 감수하면서 번 돈을 학자금으로 보내준 친구 한스를 찾아갔다.

두 친구는 서로 부둥켜안고 재회를 나누었다. 일류 화가가 되어 돌아온 듀우라아는 한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 이제는 자네 차례야"

그러나 한스의 손가락 마디마디는 옹이가 돋아 도저히 화필을 잡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듀우라아의 마음은 천갈래 만갈래 찢어지는 듯 했고, 친구 한스의 손을 잡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러나 한스는 친구 듀우라아를 위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친구야, 난 자네가 이토록 훌륭한 화가가 되어 돌아와줘 너무나 기쁘다네. 나의 이 보잘 것 없는 울퉁불퉁한 손이 자네 같은 훌륭한 화가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네"

듀우라아는 더 이상 할 말을 잊은 채 친구이며 은인인 한스의 거친 손을 붙들고, 어루만지다가 즉석에서 친구의 손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완성된 이 그림의 이름을 '기도하는 손'이라고 불렀는데 이 그림은 지금까지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명화로 알려져 있다.



어떤 보일러공이 있었는데 까마득한 학창시절 다정한 친구중에 두 다리를 못쓰는 친구가 있었다. 이 친구는 설상가상으로 폐결핵마저 앓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피를 토하고 쓰러지고 말았다.

쓰러진 친구를 급히 등에 업고 병원에 도착해 보니 치료비를 갖고 보호자와 함께 오라는 말만 할 뿐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병원에서 쫓겨난 친구는 등에 업힌 친구에게 이 다음에 커서 꼭 의사가 되어 친구의 병을 고쳐주겠다는 약속으로 위로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얼마후 그 친구는 세상을 떠났고, 어려운 가정환경으로 의대는커녕 일반대학에도 진학하지 못한 채 보일러공이 되어 힘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세월이 갈수록 어린 시절 친구에게 했던 약속은 추억속에 묻혀지고 삭막한 현실 앞에 하루하루 살아가던 중에 어느 날 우연히 보일러 수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추위에 떨며 길가에 앉아 있는 할머니를 만나게 되었고, 연탄보일러가 고장났다는 말에 할머니의 고장난 보일러를 고쳐주고 며칠후 그 앞을 지나가다가 궁금해서 할머니 집을 두리번거리며 찾아가 어떤 청년을 만났는데 '쳐다본다'는 이유만으로 흠씬 두들겨 맞게 된 것이다.

보일러공은 억울하고 분통이 터졌지만 우선 할머니네 보일러가 제대로 가동중인지를 점검해야 한다는 생각에 아무 말 없이 할머니 집을 찾았고,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뒤 집으로 돌아오는데 아까 자기를 실컷 두들겨 팬 청년이 무릅을 꿇고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빌고 있었다. 그 청년은 할머니의 손자였던 것이다.

보일러공은 어이가 없었지만 청년의 삐뚤어진 마음을 고칠 수 있었다는데 흐뭇해했고, 이때 어린 시절 두 다리가 없이 불행한 생활을 하다가 폐결핵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의 웃는 모습이 떠올랐다.

"친구야! 난 너와의 약속을 오늘에야 지킬 수 있었구나. 비록 너의 병을 고쳐주지는 못했어도 가난한 이웃들의 차가운 마음과 보일러뿐만 아니라 잘못된 청년의 마음도 고치지 않았니?"

보일러공의 얼굴에는 하얀 함박꽃 웃음이 떠오르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