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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두려워하면 개혁을 못한다

 이 정 재    광주교육대학교 2대총장  한국대학교총장협의회 부회장

‘교실 바꾸기’ 개혁 작업도 교무처장 당시에 시도해 성공을 거뒀다. 교시, 교표 등을 바꾸는 일이었다. 교육대는 그때까지도 예전 사범학교 때의 학훈인 ‘진취, 지성’을 그대로 쓰고 있었다. 다른 대학의 사례를 연구하는 등 개혁 실행을 위한 위원회를 구성했다. 대학도 보수적이고 변화를 싫어하는 이들이 많다. 아니 많은 정도가 아니라 변화를 반대하고 두려워한다. 학훈을 처음 만들었던 사람들의 반발도 컸다. 그러나 결국 설문지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고 심사숙고한 결과 지금 교내에 걸려 있는 교시를 만들었다.

‘우리는 진리를 탐구하고 정의롭게 행동하며 자랑스런 스승의 길을 간다’

그즈음 학생들이 교사로 발령이 나지 않는 시기가 계속되고 있었다. 대학원 설치가 논의되면서 교육부는 학부생 발령이 나지 않기 때문에 대학원을 인가하는 대신 학부생을 줄이라고 안을 내놓았다. 적잖이 120명이나 줄이라는 것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발하면서 교육부에 “학부와 대학원은 전혀 다르게 운영되는 독립 체제”라며 항의했다. 교육부 실과장과 함께 한 자리에서 언성을 높이면서 싸우다시피 했다. 그런 연후에 결국 그 해만 학부생을 40명 줄이고 다음해부터는 다시 정원 수를 회복해 운영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이든지 끝나고 난 뒤 배울 점이 있었다.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강성’만 가지고는 안되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능력도 길러야 한다는 점올 체득한 것이었다.

김숙희 장관은 대학원 인가조건을 달았다. “학생 데모를 막아라”는 것이었다. 97, 98년 이태째 교사 임용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임용고사가 실시된다고 하자 학생들이 수업거부 투표에 들어가기로 하는 등 교내가 시끄럽기 짝이 없었다. 장관이 데모를 막도록 하라고 할만도 한 것이 전국교육대 학생회장단이 서울에 모여 KBS 방송국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동맹 수업거부 투표를 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수업 거부는 초읽기에 들어간 상태였다. 당시 전국교육대학 학생처장 협의회장을 맡고 있던 나는 불보듯 뻔한 수업 거부동맹을 앞두고 대책마련에 부심할 수 밖에 없었는데 장관이 대학원을 걸고 조건을 붙인 것이었다.

방법은 오로지 정공법 밖에 없었다. 학생의 입장으로 돌아가 그를 진정으로 생각해 주는 것이다. 광주교대 학생회장이 당시 전국학생회 대표였기 때문에 우리 대학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전국 교대의 향방이 결정됐다. 정해진 투표일을 15일 남기고 ‘각개전투’로 들어갔다. 즉 한명의 교수가 한명의 학생들을 각각 만나기로 했다. 밤 11시에서 12시 사이에 모든 학생들을 한명씩 만나갔다. 해당 학생아 사귀고 있는 이성을 가능하면 동반했다. 요지는 “수업거부 이후 너에게 닥쳐올 문제.”에 대한 것이었다. “수업 거부에 대한 학교측의 응징은 단호하다. 총장을 비롯해 전 교수들이 결의문을 작성, 읽었다. 주동 학생들을 용서할 수는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결국 희생양은 너희들이다”

개개인의 미래와 장래를 진정으로 걱정해 주는 교수의 설득은 큰 효과가 있다. 불같은 행동으로 연결되려다가도 한걸음 뒤로 물러나 냉정해질 수가 있는 것이다. ‘희생양’이 되지 말도록 간곡히 호소하는 교수가 있고 그 옆에는 눈물을 흘리는 애인이 있다. 그래서 학생회장은 “어떤 좋은 대안이라고 있겠느냐”고 물었다. 이야기가 이쯤 되면 얼마든지 방법은 있는 법이다.

나는 세가지 이야기를 해주었다. 첫째 투표는 하되 부정선거는 말라. 둘째 개표는 깨끗하게 진행하라. 셋째 수업거부 투표를 알리는데 확성기나 마이크를 쓰지 말라. 이 원칙을 철저히 지키게 되면 너는 학생회장의 체면도 잃지 않고 이 일을 원만히 수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결국 투표 결과는 수업거부를 반대하는 것으로 판가름났다. 나는 확신이 있었다. 대다수의 학생들은 수업거부에 찬성하지 않고 있 다는 것을. 그만큼 학생들에게 수업거부 문제를 두고 학교 당국과 교수들의 설명과 설득이 있었고 공감을 얻었다는 자신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기자회견까지 한 학생 회장의 체면도 충분히 살았다. 수업거부 투표는 약속대로 실시했지만 학생들의 거부로 사태는 자연스레 정리된 것이다. 학생회장이 찾아와 감사를 표시했고 광주교대 방식대로 따라 준 다른 교육대에서도 결과가 이렇게 나오자 모두 안도했다. 학생 한명 한명과 대화로 풀어간다는 지침과 투표할 때의 세가지 원칙들은 모두 전화를 통해 전국 학생처장에게 전달됐다.

순간순간마다 상황을 서로 주고받으며 숨 가쁘게 펼친 협동작전이 성공을 거둔 것이었다. 그렇게 마무리가 지어지자 교육부로서는 대학원을 인가하는데 더 이상 이유를 붙일 수도 미룰 수도 없었다.

함평신문  hpnews@hp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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