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9.11.29 10:34

김 철 수 박사

본지상임고문•美솔로몬대학교 한국학장

 

우리나라가 지난 2016년부터 고령화 사회로 진입했다. 우리고장 함평천지도 고령화 비율이 어느 곳보다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도시의 노령화는 물론 농촌의 노령화도 시간이 갈수록 심각한 상황이다. 농지면적의 91%가 60대 이상이 소유하고 있으며 앞으로 30년 이후가 되면 초 고령 사회로 변해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을 정도이다. 요즘 꼰대’라는 말이 유행이다. 그 낱말의 뜻은 본래 아버지나 교사 등 나이 많은 남자를 가리켜 학생이나 청소년들이 쓰던 은어였으나 근래에는 자기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이른바 꼰대 질을 하는 직장상사나 나이 많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의미가 변형된 속어이다. 지금으로부터 58년 전인 1961년 2월9일 동아일보에서 ‘영감걸인’을 가리키는 걸인집단의 은어로 꼰대라는 낱말을 처음 사용했다. 그 후 1966년 3월8일자 동아일보에서 연재하던 통속소설<서울은 만원이다>에서는 꼰대가 나이 많은 남자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7080세대를 함축해서 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세대는 지금세대로서는 감히 겪어보지 못한 숱한 사연과 곡절을 온 몸으로 겪으며 살아 온 세대이다. 일명 <호롱불>세대로 90%가 전기의 혜택을 받지 못해 호롱불’과‘등잔불’밑에서 코가 새카맣게 그을리며 공부를 해야만 했다. 그리고 <뒷간>세대로 90% 이상이 집안에 화장실이 없어 엄동설한에도 마당건너 외떨어진 재래식변소에 가서 볼일을 보며 자랐다. 또한 <우물>세대로 상수도가 집집마다 없어 마을 공동우물에 가서 양동이로 물을 길어다가 항아리에 담아 놓고 식수로 마시며 살아왔다. 그리고 <가마솥>세대로 98%정도는 집안에 목욕탕이 없어 가마솥에 물을 끓여 고무다라 속에 들어가 목욕을 해야 했고, <손빨래>세대로 100%가 집 안에 세탁기가 없어 빨랫감을 이고지고 마을 앞 개울가로 나와 추운 겨울에도 맨 손으로 얼음장을 깨고 빨래를 해야 했다. 또한 <검정 고무신>세대로 95%는 구두나 운동화조차 없어 자동차 타이어 폐품으로 만든 질긴 검정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그리고 <보자기>세대로 98% 정도는 책가방을 사용하지 못하고 보자기에 책을 싸서 허리에 묽고 달리다보면 딸가닥 딸가닥 하는 소리에 발걸음을 맞추며 살아온 세대다. 그리고 <고무줄>세대로 100%가 마땅한 놀이기구나 장난감이 없어 여자애들은 고무줄놀이를 하고 사내애들은 새총을 만들어 사냥연습을 하며 놀았다. 그리고 <주판>세대였다. 전자계산기나 컴퓨터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다섯 알짜리 주판을 굴리면서 계산을 했고 이것도 높은 급수를 따야 은행 등 좋은 직장에 취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공돌이, 공순이>세대로 가정이 가난하여 상급학교에 진학을 하지 못하면 남의 집에 가서 식모살이를 하거나 공업단지로 나가 공돌이나 공순이로 살아야 했고 일부는 달리는 버스차징을 하면서 밤이 되면 산업체 특별학급에 나가 공부하는 주경야독의 삶이었다. 그리고 <월남전>세대로 나라가 빈곤하여 목숨을 걸고 전쟁터에서 생명과 맞바꾼 외화를 벌어 보내야 했다. 또한 <광부와 간호사>세대로 고국과 고향산천을 떠나 독일로 가서 남자들은 석탄광부로 여자들은 간호사로 취업해 죽은 시체를 닭는 일을 해 돈을 벌어 고국의 경제 살리기에 앞장섰는데 그나마 고졸이상의 학력과 평균 5:1의 치열한 경쟁률을 거쳐야 했다.

오늘날 꼰대라고 무시당하는 7080세대는 <중동노동자>세대이기도 했다. 열사의 나라 중동지역에 가서 가족과 자식들을 위해 돈을 벌어왔고 그 돈을 밑천삼아 현재의 부유한 대한민국이 세계 속에 우뚝 서 꼰대들이 갖는 긍지와 보람은 그들만이 아는 희열이요 기쁨이다. 그 꼰대들이 지금도 재활용, 폐품을 줍기도 하고 허리가 구부러져도 자식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래서 꼰대들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마시는 술에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로서 가장으로서 엄한 부모님 모시고 밤도 없고 낮도 없이 열심히 일해 <캥거루세대>를 키워낸 죄밖에 없는 센드위치 세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토록 힘들고 어렵게 일구어 낸 이 나라가 위기에 빠지지는 않는지 또 하나의 염려가 늘어난 2019년도가 이젠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