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9.11.12 10:20

 

장 의 관 (張義寬)

미국 University of Chicago 정치학 박사

이화여자대학교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현)

떠돌이 노동자이던 영달과 정씨는 고단한 도시 밑바닥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 삼포로 발길을 향한다. 하지만 삼포는 더 이상 이들의 지친 영혼이 안주할 예전의 조용한 고기잡이 섬마을이 아니다. 섬과 육지를 오가던 나룻배 대신 둘 사이를 잇는 다리가 건설되고 관광호텔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삼포는 영달과 정씨가 떠난 삭막한 도시와 차이 없는 또 다른 도시로 변모한다. 영달과 정씨는 불도저의 굉음으로 시끄러운 고향마을이 자신들을 반겨줄 안식처가 될 수 있을지를 불안해 하지만,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이들을 태운 밤열차는 어둠 속 눈발을 헤치며 무심히 질주한다.

이 이야기는 황석영의 소설 『삼포 가는 길』의 한 대목이다. 이 소설은 1970년대의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 과정 속에서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밀려나온 하층 노동자들이 타지에서 겪는 삶의 애환과, 각박한 도시의 삶에 지친 이들이 품고 사는 떠나온 옛 고향마을에 대한 애틋한 향수를 소재로 한다. 그리고 상처받은 이들이 마음 속 고향으로의 회귀를 희망할 때, 급속한 개발열풍의 여파로 인해 옛 고향은 이미 사라지고 생소한 타향만 이들을 기다린다는 개발독재 시대의 어두운 사회상을 기술한다.

긴 미국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후 아태재단 행사차 광주를 방문했던 2000년대 초반, 홀로 시간을 내어 고향 함평을 들렀다. 20여년 만에 방문하는 고향길을 다른 이 도움 없이 찾아갈 수 있을까 하는 우려는 잠시였고, 함평 가는 길은 그 초입부터 어린 시절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가옥지붕 개량이 일부 이루어지긴 했지만 옛 자리에 변함없이 머물고 있는 영흥리 마을 집들과 콘크리트로 덮어지긴 했지만 옛길 그대로의 비좁은 진입 도로들. 어린 시절 뛰놀 때 꽤나 넓다고 생각했던 고향집 마당이 왠지 쪼그라들었다는 느낌만 제외하면 고향 마을의 모든 것은 거의 그대로 남겨져 있었다. 마치 오랜 동안 시간이 정지되었던 것처럼.

그리고 또 다른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요즘에도 함평을 방문할 때면 여전히 시간이 정체된 곳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10년의 세월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으니 지난 40년 동안 함평의 강산도 족히 네 번은 바뀌었을 만한데, 함평의 대부분 지역은 발전을 거부한 채 놀라우리만큼 과거의 모습을 지속한다. 옛 고향의 향수를 찾는 마음뿐이라면 바뀌지 않은 고향의 모습에 흡족할 수 있겠지만, 고향의 미래를 생각하게 되면 발전 없는 함평의 모습이 커다란 안타까움으로 다가온다.

1960년대 중반만 해도 인구 14만명의 나름 생동력 있던 함평군이 과반세기가 지난 지금 인구 3만3천명으로 전국에서 발전이 가장 더딘 지역 중의 하나로 전락하고 말았다. 지속적인 도시화로 인해 농촌 지역의 위축이 어쩔 수 없는 현실임을 인정하더라도, 과거 유사한 인구수를 지녔던 남쪽의 무안군과 북쪽의 영광군이 현인구수 8만2천명과 5만4천명임을 감안했을 때 현재 함평군의 모습은 초라하기만 하다. 동쪽 경계의 광주광역시와 나주시까지 함께 묶어 살펴보면 전남서부 지도 속의 함평군은 마치 주변 시와 군에 둘러싸인 고립된 저발전의 섬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사단체나 대기업 공장 하나 유치하지 못한 현실 속에서 함평군의 미래발전 동력을 언급하는 것은 우리를 더욱 암울하게 만든다. 발전하고 바뀐다는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니라고 스스로 자위도 해보지만, 경쟁적으로 발전을 도모하는 주변 시 및 군과는 달리 과거 속에 묻혀있는 듯한 함평을 대면하는 것은 고통이 아닐 수 없다. 또 다른 20년이 지난 후에 내고향 함평이 산산이 쪼개져서 주변 시와 군의 변방으로 편입되는 소멸의 과정을 걷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나만의 것일까?

『삼포 가는 길』은 어쩌면 발전하는 고향을 가진 배부른 자들의 독백일지 모른다. 함평 가는 길 위에서 나는 삼포의 불도저 소리를 도리어 부러워한다. 그리고 함평의 앞날을 진중하게 성찰하고 미래발전의 해법을 제시할 참신한 지역 정치리더십의 등장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