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8.02.03 20:19

 

                                                                                      

                                                                            

                                       전남서부보훈지청 보상과 양동석

100년 전, 4월 11일은 대한민국과 임시정부가 설립된 날이다. 1910년대, 민족말살정책을 펼치던 일제강점 하에 대한민국은 총궐기하여 3.1운동을 통해 독립을 선포하였다. 3.1독립선언서 첫 구는 “우리는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된 나라인 것과 조선 사람이 자주 국민인 것을 선언한다.”로 시작한다. 빼앗긴 조선에 대하여 독립국임을 선포하였으며 이를 되찾아 다시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이 세워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수순으로 정부가 세워졌으나, 일제강점 하의 이 땅에서 세울 수가 없기에 외교적 이점을 우선하여 상하이에 임시정부가 세워졌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해외에 세워진 까닭이다.

사실 임시정부는 상하이에 세워진 하나만이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세 곳이 있는데, 상해의 임시정부, 서울의 한성정부, 블라디보스토크의 국민의회정부가 그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독립운동운동가들은 “상해와 노령에서 설립한 정부들을 일체 작소하고, 오직 국내에서 13도 대표가 창설한 한성정부를 계승”키로 하고, 정부 명칭은 독립선언 이후에 각지를 원만히 대표하여 설립된 정부의 역사성을 살리기 위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라 하며, 그동안 상해 임정에서 실시한 행정은 그대로 유효함을 인정하게 된다.

이로써 1919년 9월초 재출발한 통합임시정부는 한성정부의 정통을 계승하고 상해 임정과 블라디보스토크의 정부의 전통도 포용하는 새 임시정부가 되었다. 이렇듯 대한민국은 나뉘어있던 독립운동가들의 염원이 3.1운동을 계기로 하나로 통합되어 설립된 것이다.

그리고 이는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헌법 전문의 구절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러한 임시정부의 국통을 이어받은 대한민국은 독립운동가들의 염원을 이어받아야 한다. 더 큰 대한민국으로 나아가기 위하여 국민들이 독립유공자분들과 호국영웅들의 숭고한 희생과 공훈을 잊지 않고 추모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여 명예로운 보훈이 확산되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