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7.08.27 19:55

공직사회에서 청렴이란 단어를 모르는 공무원은 없을 것이다. 청렴은 공무원이 지켜야할 의무이나 부정부패와 비리사건은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여기 청백리의 삶을 살았던 두 사람을 소개하고자 한다. 아곡 박수량과 지지당 송흠 선생이 그 본보기다. 모두 오랜 세월을 공직자이면 정치인으로 살았다. 아곡 선생은 38년, 지지당 선생은 51년 동안 고위 관직을 지냈다. 두 분들은 뇌물을 받지 않았고 접대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들은 청백리의 표상으로 후세들에게 모범이 되고 있다.

아곡 박수량(1491-1554년) 선생은 조선 성종 22년 장성 황룡에서 태어났다. 24세에 과거급제를 하고 고부군수, 병조참지, 동부승지, 호조참판, 예조참판 형조참판, 우참찬 좌참찬, 호조판서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그럼에도 선생의 이름은 지금까지도 길이 남아 있다. 청백리의 상징적인 인물이 됐다. 벼슬과 공직은 물론 이름도 새기지 않은 백비는 청백리를 상징하는 유물이 됐다.

송흠(1459-1547) 선생도 청백리와 효를 다한 선비로 어깨를 나란히 한다. 조선 세조 5년 장성 삼계에서 태어났다. 34세 문과급제 후 나주목사, 승정원 승지, 담양부사, 전라도관찰사, 이조판서, 병조판서, 우참찬 판중추부다 등을 지냈다. 무려 51년 동안 관직에 있으면서도 처자가 굶주림을 면한 정도로 청빈하게 살았다. 당시 지방관이 다른 고을로 부임할 때 말 일곱 마리를 받는 게 관례, 하지만 그는 자신과 어머니, 부인이 타고 갈 말 세 마리만 받고 나머지는 사양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백성들이 삼마태수라 부르며 높이 받들었다. 가는 곳마다 청렴하고 매사에 조심성이 있다면서 백성들이 칭송이 자자했다. 중종이 왕으로 있는 38년 동안 무려 다섯 번이나 청백리로 포상을 받았다고 한다.

위와 같이 우리 조상들의 삶속에서 우리가 배워야할 청렴의 길을 찾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영광소방서 홍농센터장 소방경 정병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