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5.12.02 10:54
유년의 아득한 풍경 속에는 갈대가 서걱이는 소리가 있다. 마을 앞 바닷가는 물론 제방 안 논이 있는 마을 쪽에도 널따란 갈대밭이 있었다. 그 곳에서는 뜸북새가 울곤 했는데 갈대 숲속을 뒤지면 뜸부기 둥지가 있었다. 집에서도 들리는 ‘뜸 뜸 뜸’ 하며 우는 뜸부기 소리는 갈대밭이나 인근 논에서 들려오기 때문에 아이들은 뜸부기 소리의 향방을 금방 알 수가 있었다.

갈대는 바닷물이 있는 곳에서도 살지만 민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지점에서도 무성하게 잘 자란다. 한때는 논이었던 마을 앞 들녘에 바닷물이 범람해 논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되어 그대로 방치해두면 그곳에서 갈대가 자라났다. 갈대는 번식력이 매우 강해 금세 습지를 점령해 세력을 넓혀버렸다. 그래서 갈대밭을 보면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봄이 되면 갈대는 뾰족하지만 연하고 부드러운 싹을 내민다. 새싹을 베어다가 나물을 해먹기도 하지만 금세 잎사귀가 뻣뻣해지기 때문에 나물로 해먹는 경우가 드물었다. 순식간에 사람의 키를 넘어 2~3m 크기로 자라버리는데 갈대숲은 뭇 생명들이 살기 좋은 환경이다. 털이 까맣고 긴 참게가 많이 서식했다. 갈대 숲에 구멍을 파고 사는 게들은 갈대를 타고 놀기도 한다. 우리 동네에서는 이놈들을 잡아 게장을 만들거나 삶아 먹었다.

게뿐만 아니라 갈대 숲에는 뜸부기를 비롯한 두루미, 황새 등의 새들이 먹이활동을 하거나 둥지를 틀기에 좋은 곳이었다.

갈대는 생명의 노래를 부르던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의 풍경이 각기 다르다. 봄 여름에는 푸르름이 생기발양한 느낌을 주지만, 가을과 겨울이 되면 갈색으로 변해 마치 노년에 든, 그러나 아주 지혜로운 노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갈대에서는 갈꽃을 피우는데 이것들의 모개를 베어 우리 동네에서는 빗자루를 만들어 사용했다. 갈대빗자루는 빗자루 중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것이었는데, 가을날 갈꽃을 베어 솥에 넣고 푹 삶은 뒤 빗자루를 만들면 꽃이 잘 떨어지지 않아 방을 쓰는 빗자루로 사용하면 아주 좋았다. 그래서 가을이 되면 동네 사람들은 바닷가로 나가 갈대꽃을 베는 것이 하나의 연례행사였다. 어떤 집에서는 아예 갈대빗자루를 만들어 장에 내다 팔기도 하였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명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갈대는 연약해 흔들린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렇지만 흔들리데 결코 꺾이지 않는 것이 갈대이기도 하여 갈대를 강인함의 표상으로 내세우기도 하였다.

여름날 비바람 속에서도 갈대는 부딪히며 소리를 내기도 하지만, 특히 늦가을이나 겨울에 흔들리는 갈대의 소리는 자못 엄숙하다. 물론 듣는 사람의 마음이겠지만 갈대는 신경림 시인이 시에서 노래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간곡한 인간의 삶을 상징적으로 함축한 존재이다. 즉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조용히 울고 있었다./그런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그의 온 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그는 몰랐다.” 「갈대」라는 시를 가슴에 담고 흔들리는 갈대를 바라보면 눈에 보이는 갈대 그 이상의 무엇이 보인다.

바람이 불면 갈대는 고개 숙인 채로 흔들렸다. 혼자서만이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갈대 마을 모두가 흔들렸다.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하나같이 흔들렸다. 흔들려야만이 살아가는 존재의 이유가 되는 것이 갈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갈대는 바람이 불 때마다 ‘서걱서걱’ 또는 ‘스르륵 스르륵’ 소리를 내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오늘날은 순천만 갈대밭처럼 갈대밭이 친생태적인 공간으로 환영을 받는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갈대라는 상징이 담고 있는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사유의 의미도 읽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