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5.12.02 10:51
3년 연속된 풍년으로 쌀 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만신창이가 됐다. 쌀값은 폭락하고 창고는 넘쳐나고 함평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근심은 깊어만 간다.

농업인들도, 미곡종합처리장(RPC)도, 유통업체도, 정부도, 정책연구기관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우왕좌왕이다. 긴급처방으로 생산조정제가 도입됐지만 근본적인 해법이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의 고민도 깊어 가지만 마땅한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북쪽의 식량상황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지만 남북관계가 경색돼 대북지원이라는 출구는 꽉 막혀 있다.

그러나 작금의 쌀 대란은 풍작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생산과 소비에 내재돼 있는 구조적 문제가 증폭돼 나타난 것이다. 거의 완전경쟁구조 하에 있는 농업인들이 작목 선택의 별다른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시장가격이 하락하고 소득이 감소하면 생산을 줄이기보다 최선을 다해 생산을 증가시킨다.

이는 가격 하락에 따른 소득감소를 보전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농업인들은 품질이 떨어지더라도 단수가 높은 품종을 선택하고 있다. 1인당 소비하락 속도가 너무 빨라 다양한 소비증대 방안이 무력해 보인다. 손쉬운 시장격리 방안인 대북지원은 정치적인 여건에 따라 결정돼 정책적 대안이 될 수 없다.

쌀의 수급을 시장기능에 의해 자율 조정한다는 현재의 쌀 소득보전직불제는 최근과 같은 비상상황에 매우 무기력한 정책임이 증명됐다. 정부의 시장개입을 최소화해 가격은 시장에서 결정하고 정부는 일정 수준의 소득을 보전하는 소득보전직불제는 가격이 평년수준 이상인 경우에는 문제가 없지만 재고가 급증하고 가격이 폭락하는 상황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이제 쌀 정책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쌀과 같은 중요한 문제를 시장에만 맡겨 두지 말아야 한다. 정치적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는 쌀을 담당하기에는 시장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쌀이 과잉기조에 있는 것은 맞지만 연착륙을 통한 구조조정이 이뤄져야 한다.

쌀의 수급안정과 동시에 적정한 수준의 식량안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조정 역할이 중요하다. 현재의 소득보전직불제를 보완해 시장여건에 따라 선제적으로 수급을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해야 한다. 수급여건에 따라 어떤 경우에도 작동할 수 있는 유연한 정책수단이 필요하다.

쌀 문제에 대한 보다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정부의 역할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