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5.09.21 18:05

전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민족 대 이동이 시작됐다. 26일부터 시작되는 올 추석연휴는 29일을 대체휴일로 정해 4일간의 공식휴일이 이어지는 황금주말을 끼고 있다. 쾌청한 날씨에 하늘은 높고 맑으며 밤하늘에 초롱초롱 별이 반짝이고 일 년 365일 가운데 가장 커다란 둥근달이 환하게 뜨는 날이 바로 음력 8월15일이다.

도회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있고 휘엉청 둥근 보름달도 구경할 수 있다. 말 그대로 ‘별’ 볼일 있는 날이다. 이날을 우리 조상들은 가배·가위·한가위 또는 중추절(仲秋節)이라고 하여 예로부터 민족의 대 명절로 지켜오고 있다. 이런저런 사연을 안고 고향을 떠나 전국각지에 나가 살고 있는 함평군 출향민은 대충 30여만 명으로 추산한다. 현재 함평에 거주하고 있는 전체인구 3만5천여 명의 아홉 배에 이르는 숫자이다.

호남선 함평역전이나 읍내 시가지와 각 면소재지, 그리고 마을 입구마다 어김없이 걸려있는 정겨운 귀향환영 플래카드는 오랜 시간 동안 고생하며 모처럼 고향땅을 찾은 출향민들에게 한 잔의 시원한 냉수처럼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고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축 환영, 사랑하는 출향민 여러분 그동안 객지생활에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고향에 잘 오셨습니다. 마음편히 쉬었다 가십시오.” 라는 내용의 이 플래카드가 거리에 내 걸리게 된 유래는 지난 1980년대 초 당시 함평군문화원 부원장으로 재직 중이던 필자의 아이디어로 당시 호남선 학교역 앞에 등장한 것이 효시이다.

당시 서울신문에 화제로 소개된바 있었고 이 후로 전국 각 지역마다 설날과 추석 등 명절이 돌아오면 너나 할 것 없이 비슷한 내용의 플래카드가 나부끼기 시작한 것이다. 고향이란 단어는 떠나 있으면 그리움으로 늘 마음에 자리 잡고 있으며 막상 달려와 보면 산천은 그대로인데 친구도 친척도 어디론지 다 떠나고 허전함만이 추억 속에 남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어릴 적 뛰놀던 앞동산과 개울가 그리고 명절이면 고까옷 차려입고 밤이 늦도록 이집 저집을 돌아다니며 배부르게 음식과 과일을 나누던 일이 주마등처럼 떠오르기 마련이다.

이렇듯 농경민족인 우리 조상들에게는 봄에서 여름 동안 정성 다 해 가꾼 곡식과 과일들이 탐스럽게 익어 수확을 하는 계절이 돌아와 즐겁고 마음이 여유롭게 풍족했던 것이다. 기후역시 여름처럼 덥지도 않고 겨울처럼 춥지도 않아서 생활하기에 가장 알맞은 계절이므로 속담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우리 민족이 추석을 명절로 삼아 지켜온 것은 이미 삼국시대 초기부터였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제3대 유리왕 때 도읍 안의 부녀자들을 두 패로 나누어 왕녀가 각기 거느리고 음력 7월15일부터 8월 한가위 날까지 한 달 동안 두레 삼 삼기를 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심사를 해서 진편이 이긴 편에게 한턱을 내고 회소곡(會蘇曲)을 부르며 흥겹게 놀았다.

햅쌀로 밥과 술을 빚고 햇곡식으로 송편을 만들어 차례를 지내는 것이 상례이다. 금년에는 9월 26일부터 추석연휴가 시작되어 29일 대체휴일까지 4일 동안 보내게 된다. 금년에도 어김없이 전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민족 대이동과 함께 추석명절에 그리운 가족들, 그리고 친구들이 고향땅을 찾아 올 때 고향을 지키고 사는 사람들은 출향민들에게 실망을 안겨주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 고향산천을 지키며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커다란 긍지가 될 수 있고 비록 몸은 고향을 떠나 객지에 나가 살고 있어도 마음만은 언제나 고향과 함께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것도 필요하다.

우리민족은 무엇보다도 정(情)이 많은 민족이다. 얄팍한 계산을 하는 머리보다는 인간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을 뜨거운 가슴으로 사는 것에 익숙해진 민족이기에 모처럼 고향을 찾는 출향민들에게 훈훈한 인정의 꽃을 피우는 호남가의 첫머리를 차지한 함평천지(咸平天地)의 긍지를 심어주어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고향을 떠나 객지에 나가 살고 있는 출향민들에게는 고향이란 말만 들어도 눈시울이 붉어지고 어머니란 말만 들어도 마음이 먹먹해질 만큼 정겹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