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5.02.12 09:07

 

올해 지천명 50살 김행석 씨, 진도 조도가 고향으로 14살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섬에서 나와 무작정 서울로 갔다. 어린 나이에 너무나 중학교에 가고 싶었지만 가난한 집안의 장남이었던 그는 어린 동생들도 많이 있는 집에서 배를 타고 다녀야하는 중학교에 진학할 수가 없었다. “내가 돈 벌어서라도 중학교에 가고야말겠다.”는 굳은 다짐과 함께 서울로 올라갔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소년이 서울에서 쉽게 중학생이 될 수는 없었다. 우선은 먹고 잘 곳조차 구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꿈을 가슴 깊이 간직한 세월 34년을 보낸 후 2년 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목포로 내려왔다. 중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였다. 

배움의 한이 맺힌 그는 어려서 너무나 공부가 하고 싶었지만 가난해서 공부할 수 없었다는 말을 자식들에게 자주해왔다. 그는 이제 중학교 졸업장을 받으면 자식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자랑스럽지는 않지만 부끄러울 것도 없는 늦깎이 학생. 상황이 어려울 때는 잠시 멈추더라도 마음 속에 꿈이 있으면 결국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자식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3월 2일 고등학교 입학을 기다리는 그에게 14살 배를 타고 진도 조도를 떠나던 그날의 뱃길이 떠오른다.

“목포에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단지 공부가 하고 싶어서 이사 왔지요.”

부산이 고향인 김정애(62세)씨, 어쩌다 다니러 온 목포에서 어른들이 공부하는 목포제일정보중고를 알게 되어 중학교 2년, 고등학교 2년을 머물다가 13일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부산 고향으로 돌아간다.

지난해 말 제21회 푸른세대 수범사례 교육인적자원부장관상을 수상한 김정애 씨는 미혼으로 평생을 살아왔다. 어린 시절 가난한 집안의 장녀로 어두운 삶에 눌려 지내면서 결혼을 생각하지 않았던 그는 평생을 어렵고 힘든 이들을 위해 봉사한 것이 귀감이 되어 선행부문으로 수상했다.

만학도가 공부하는 학교는 부산에도 있는데 하필이면 왜 부산이 아니고 목포였냐고 물으니 잠시 생각하던 그는 ‘하나님의 인도’였다고 대답한다. 작은 교회 그룹 홈에서 10명의 가출청소년들의 엄마가 되어 울고 웃었던 4년이 있었기에 그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 김 씨는 낯선 땅 목포에서의 4년이 그의 고단했던 인생길에서 참 행복했던 날들이었다고 고백한다. 마음이 따뜻했던 학우들과 열정이 넘치던 선생님들 속에서 알고 싶은 것을 알아가는 기쁨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길이 없다.

공부하면서 제일 좋았던 순간은 선생님과 대화가 통했을 때, 새로운 지식이 이해가 될 때, 단순한 지식보다는 ‘아하’하는 깨달음이 왔을 때 등 참 많았다. 오직 공부만 했기에 열심히 중학교 2년 고등학교 2년을 보냈지만 조금은 아쉬움도 있다. 이제 대학공부는 다시 고향 부산에서 하려고 계획 중이다.

짧은 방학이지만 집에 가면 85세 엄마가

“우리 딸 많이 달라졌다. 공부를 못 시켜서 늘 마음에 걸렸는데 이제 한을 푼 것 같다. 예전에는 왠지 모를 어둠이 있었는데 이제는 편안해보이고 얼굴이 밝아졌다.”

고 말씀하신다.

직업도 없이 작은 교회 그룹 홈에서 먹고 자면서 가출청소년들을 돌보며 공부했던 그는 실제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그와 함께 2년을 지낸 짝궁은 말한다. “언니는 결코 가난한 사람이 아니고 마음이 부자야.” 

 

“오후 4시까지만 영업합니다.”

가위 하나 들고 살아온 65세 이발소 사장님, 늦깎이 고등학교 졸업하고 세한대학교 경영학과 장학생으로 3월 입학

진도에서 조그만 이발소와 슈퍼를 운영하는 김천흥 씨의 이발소 앞에는 “오후 4시까지만 영업합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벌써 5년째 붙어있는 이 안내문에 대부분의 손님들은 새벽 6시부터 오후 4시 이전에 이발을 한다.

이발소 손님들에게 학교에 다니기에 4시에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말씀드리면 많은 분들이 “대단하요. 어떻게 그런 용기를 냈소?”하며 칭찬한다. 게 중에는 “그까짓 거 이제 배워 어디에 써먹으려고 그렇게 힘들게 사냐.”며 핀잔을 주는 사람도 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1남 5녀 형제들 사이에서 초등학교를 간신히 졸업한 그는 졸업과 함께 고향을 떠나 목포 광주 등 도시를 떠돌며 이발 기술을 익혔다. 목포시 산정동, 호남동 이발소에 있을 때에 어른들이 공부하는 목포제일정보중고등학교가 있음을 알았지만 그 때는 여유가 없어 공부는 먼 나라이야기였다. 아버지의 병세가 위독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진도에 돌아왔다가 고향에 정착하게 된 그는 자식들이 커서 취직할 때 부모 학력 란에 쓸 것이 없는 것이 제일 가슴 아팠다.

미루고 미루다 시작한 공부, 60세에 어른들이 공부하는 목포제일정보중학교 1학년이 되었고, 지금 65세 이제 고등학교졸업이다. 새벽부터 손님들 시중을 들고 4시가 되면 몸이 지칠 수밖에 없고 학교 가는 길 자동차에 앉아 운전하는 것이 유일한 휴식이다.

학교에 가서 수업시간에 쏟아지는 졸음을 참기 위해 커피를 몇 잔 마시고 잠을 쫓아가며 공부를 한다. 그렇게 배우고 싶었던 영어, A,B,C,D 와 한문, 국어 등을 배우기 위해 매일 1시간 20분을 달려온다. 목포 학교에 오면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아내가 팔 물건을 조달하는 일도 그의 몫이다. 그가 이렇게 열정적으로 공부할 수 있음은 모두 아내의 배려 덕분이다.

남들이 뭐라 해도 그의 만학도 생활은 대박 그 자체였다. 

올해로 개교 54년을 맞이하는 목포제일정보중고등학교에서 13일 졸업장을 받는 만학도는 중학생 201명, 고등학생 291명으로 총 492명이다.

고등학교 최고령 졸업자는 김광우(76세 남), 조영남(75세 여)이며, 최연소 졸업자는 장선우(22세, 남), 김지후(21세, 여)이다. 중학교 최고령 졸업자는 신정희(75세 여), 서정균(72세 남) 최연소졸업자는 서정화(34세, 남) 노해순(40세 여)씨이다.

목포제일정보중고등학교는 여러 가지 이유로 학교교육 기회를 놓친 성인과 청소년들을 발굴하여 자아실현을 돕고 평생학습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교육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며 현재 중학교 489명, 고등학교 574명 총 1,063명의 만학도가 배우는 기쁨 속에 당당하게 생활하고 있다. 수업은 오전반, 오후반, 야간반 삼 계열로 나누어져 성인학습자들이 일하면서 공부할 수 있도록 운영되고 있다. 

< 목포제일정보중고 제27회 졸업증서 수여식 >

* 일시- 2015년 2월 13일(금), 오전 10시 30분

* 장소- 본교 운동장

* 졸업인원 – 총 492명(중 201명, 고 291명)

* 사진은 졸업식 후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