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4.03.03 17:46

<강경호 시인의 추억의 창-27>


우리 고향은 전국에서도 가장 유명한 난의 고장이다. 그래서 전국 규모의 난전시회를 해마다 개최해오고 있다. 눈이 많이 내리는 남서해를 끼고 있는 지리적인 영향으로 좋은 난이 많이 자생을 하는 것 같다.

유년에 당산의 우리 산을 오르다보면 아직 쌀쌀한 날씨임에도 낙엽 속에서 향긋한 향기를 풍기며 꽃망울을 터뜨리는 난초를 볼 수 있었다. 그 때는 아직 난초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던 시절이라서 그저 지천에 널린 풀 정도로만 인식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난초 붐이 일어 너도나도 산을 뒤지며 채란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러다보니 난초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 우리 고장의 좋은 난초가 많은 것을 알리게 되고, 단박에 난초의 고장이 되어버렸다.

우리나라의 산에 야생하는 난초를 흔히 민춘란이라고 한다. 소심(素心)이라고 불리는 이 난초는 이름 그대로 서민들을 닮아 소박한 꽃을 피워올린다. 푸른 잎사귀를 늘어뜨린 소심은 혓바닥 같은 흰꽃을 피워올리는데, 가운데에 약간 진홍빛이 나는 색깔이 박혀있다. 난초에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한 나는 그저 흰 저고리를 입은 듯한 꽃의 색깔과 폐부를 뚫고 들어와 풍기는 은은한 향기를 좋아한다. 모두가 눈 속에서 움츠리고 봄을 기다리고 있는 세한의 끝자락에서 눈을 밀어내며 꽃을 피워내는 모습이 마치 고고한 선비의 기질을 보는 것 같아 가까이 하는 편이다.

발목이 빠지는 눈 속에서 먹을 것이 없어 눈 위에 드러난 푸른 난초 잎을 산토끼나 노루 등 산짐승들이 뜯어먹은 난초가 반토막이 난 것을 겨울산을 돌아다니며 보았다. 잎이 뜯긴 난초이지만 이 끈질기고 인내심이 강한 연약한 풀은 이따금 지저귀는 산새들 소리 뿐인 적막한 겨울 산 속에서 그 고고한 마음을 드러낸다. 난은 기품이 어진 선비를 닮았다. 그래서 우리 선비들은 사군자 중에서도 으뜸으로 여겨 자주 그림으로 그려냈다. 난초의 생태적 특징을 자신의 마음 속에 담고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난을 잘 쳤다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난초를 기억한다. 서슬퍼런 안동권씨의 세도정치 속에서 왕의 피를 이어받은 몸이지만, 오직 살아내기 위해 상갓집 개노릇을 하며 미친짓을 하면서도 그가 스승 김정희로부터 배운 선비기질을 통해 위태위태한 세상을 건너가게 한 것이 난초의 정신이 아니었나 생각을 해보곤 한다.

그러나 나는 이하응의 난초보다 춘곡 강동원 선생의 난초를 내가 지금껏 본 가장 훌륭한 명품으로 생각한다. 그의 난초는 기생의 치마에 술값을 치루기 위해 쳤다는 둥, 안동권씨의 모멸찬 인격적 폭력에 칼을 갈며 키워낸 난초이기에 어딘가 불량한 기운이 감돈다. 춘곡 강동원 선생은 나와 동본이어서 뿐만 아니라 내가 존경하는 어른이다. 한약방을 하고 계시는데 문예창작을 공부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역사를 깊이 통찰하고 바라보는 속 깊은 철학박사이다. 그는 선비의 덕목인 시·서·화(詩·書·畵)를 겸비하고 있어 요즘 보기 드문 선비이다. 광주 인근에 국조전을 세워 국조 단군을 흠모하고 한 해가 가는 마지막 날에는 전국의 유림과 시인들을 초청해 시를 경연하는, 우리 시대에 마지막 남은 진정한 선비이다.

선생은 손수 난을 쳐서 그 중에서 가장 빼어난 그림을 나에게 선물하였다. 그 그림은 내 서재에 걸려 있는데, 거침없이 벋은 잎과 향기로운 난초향을 풍기는 자태이다. 그림은 아무리 잘 그려도 사람 됨됨이에 흠이 있으면 어딘가에 티가 있게 마련이다. 마음에 티가 없어 맑은 선생이 치는 난엔 그런 선생의 마음이 배어 있다. 뿐만 아니다. 부끄러울 일도, 망설일 일도 없는 선생의 성품은 글씨에도 엿보인다. 기교가 없는 글씨는 반듯하게, 그리고 거침없는데에서 오직 바른 삶을 살아온 선생의 삶과 연륜이 느껴진다.

사군자를 좋아하는 나는 정원에 난초, 매화, 대, 국화를 심었다. 그 중에서 난초는 고향의 우리 산에서 채란한 것으로, 봄이 오는 길목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숙성한 은은한 향을 풍겨준다. 한때 난이 비싼 가격으로 거래되자 얼치기 난꾼들이 온 산을 뒤져가며 한 가마니씩 무작정 채란하는 시절이 있었다. 선비 정신의 표상인 난을 돈벌이로 생각한 그런 사람들이 한심스러웠다.

난 전시장에 가면 온갖 진귀한 난들이 자태와 향기를 뽐낸다. 다양한 형태와 여러 가지 색깔의 난들이지만 화장품 냄새가 나지 않고 천박하지도 않은 난들은 모두가 기품이 느껴진다. 꽃도 사람을 닮아 수다스러운 사람, 절제있는 사람, 화류계에서 노는 사람, 풍류를 즐기는 사람, 얼굴만 봐도 기품이 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난은 왠지 말수가 적고, 신의가 있고, 소박하지만 열심히 사는 사람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소심은 지체높은 사람의 모습보다 평민의 자태에 가깝고, 남성보다는 화장기 없는 여성의 모습이다. 그래서 나는 일찍이 나의 아내를 소심(素心)이라고 불렀다. 다소곳하고, 정갈하고, 수다스럽지 않은 정숙한 아내의 이미지에 걸맞는 것이 소심이기 때문이다.

가끔 고향 선산에 가서 산을 뒤지며 우리나라의 민춘란인 소심을 찾는다. 눈과 낙엽 아래에서 푸르게 살아서 형언할 수 없는 향기로 온 산을 휘감고 도는 소심을 발견하며 옛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소심 같은 사람이 되지 못함을 탓하며 한참동안 하얀 난꽃을 바라본다. 난이 꽃피는 소리를 들을 수는 없지만 차가운 눈을 밀어 올리며 아주 천천히 꽃을 피우는 소리를 듣는다. 그 소리가 나를 키워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