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4.01.21 14:02

김 철 수
본지 논설위원
아동문학가·美솔로몬대학교 한국학장

6·4 지방선거가 불과 4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조그만 시골마을인 우리지역 함평에도 이미 선거바람이 알게 모르게 불고 있는 것 같다. 문득 우리민요인 새타령의 노래가사가 떠오른다.


‘새가 날아 든다 / 왼 갑 잡새가 날아 든다/ 새 중에는 봉황새 / 만수 문전에 풍년새 / 산고곡심 무인처 / 춘림비조 뭇 새들이 / 농춘화답에 짝을 지어 / 쌍 거래 날아 든다 / 말 잘허는 앵무새 / 춤 잘 추는 학 두루미 / 솟댕 쑥국 앵매기 뚜리루 / 대처의 비우 소로기 / ...

 물론 이 새타령은 우리민요풍의 노래로 듣는 사람에게는 흥을 돋우고 신바람이 나게 하는 타령이다. 그런데 선거철만 되면 어디서 날아드는지 정치철새들이 날아들어 조용하고 평온한 지역사회의 정서를 혼란하게 만들고 있다. 요즘 온 국민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조류독감을 옮기는 철새들처럼 무서운 존재들이다. 선거가 끝나면 자취를 감추었다가도 또 다시 선거가 시작되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인간 철새들은 삽시간에 지역사회에 반목과 분쟁을 일으키며 혼란을 야기 시키는 바이러스가 되어 지역을 황폐화 시키는 바람에 AI 전염병보다 더 무서운 존재들이다.

기독교의 경전인 구약성경에 보면 지도자를 뽑는 선거와 맥락을 같이하는 내용이 실려 있다. 어느 날 평화로운 숲 속의 나무들이 자기들을 다스릴 지도자인 왕을 뽑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맨 먼저 질 좋은 감람유를 생산하여 다른 나무들로부터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는 감람나무를 찾아가 숲 속의 왕이 돼달라고 간청을 한다. 오늘날의 선출방식이 아니라 추대방식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 요청을 받은 감람나무는 자기의 기름이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므로 더 이상의 바랄 것이 없으니 어찌 내가 그것을 버리고 나무들 위에 앉아 요동을 하겠느냐며 단호하게 거절을 한다. 하는 수 없이 이번에는 무화과나무에게 찾아가 똑같은 아유로 간청을 하지만 무화과나무 역시 자기의 아름답고 단 실과를 버리고 나무들 위에서 요동을 하겠느냐며 거절을 한다. 그 다음으로 찾아간 것은 바로 포도나무였다. 그러나 포도나무 역시 나무들의 최고지도자가 되어달라는 청을 단호하게 거절 한다. 이러한 과정을 지켜보던 가시나무가 자기 스스로 못이기는 척하며 그렇게 나무들이 원한다면 내가 왕이 되어주겠노라고 거드름을 피우면서 이제부터는 모든 나무들이 내 그늘에 피하여 살라는 선심성 발언까지 하기에 이른다. 결국 숲 속에 있는 나무들은 그 후 가시나무의 그늘아래서 마음대로 크지도 못하고 온갖 고생을 다한다는 내용이다.

가시나무는 숲 속에 있는 수많은 나무들 가운데서 가장 신뢰하지 못할 나무였고 더욱이 다른 나무들을 다스릴 지도자로서의 덕목이나 자격이 전혀 없는 최악의 나무라는 점이다. 이 이야기가 우리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자격 없는 지도자를 잘못 선택하게 됨으로 인해 수많은 구성원들이 당할 불이익과 손해를 생각해서 선택을 잘하라는 교훈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지방자치제도의 꽃이라고 부르는 지방선거를 그동안 20여년 세월동안 해왔지만 바라고 원하던 풀뿌리민주주의는 어디로 가고 각각 자기편을 만들어 상대편을 적대시하여 싸우는 뿔뿔이 민주주의로 전락하고 만 것 같다.

우리 지역에서도 지역을 위해 일할 참다운 일꾼을 찾고 있지만 어느 누구하나 군민들의 절대적인 신뢰와 믿음을 주는 후보자가 안 보인다. 서로 자기가 적임자라고 나서기는 하는데 바로 이 사람이다 하는 생각이 들지 않아 풍요속의 빈곤을 느낄 정도로 허탈하기만 하다.

국민들은 늘 최선을 원하지만 그것마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세상사이다 보니 이번에도 차선을 선택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부터 앞선다.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더 이상 지역사회의 민심이 살벌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