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4.01.21 11:56

<강경호 시인의 추억의 창-25>

(시인, 문학평론가)
이제 며칠 후면 설이다. 그동안 시대의 흐름에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의 풍속도와 설의 의미가 많이 변한 것이 사실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세시풍속도 그 시대에 맞게 변하기 마련이지만 내 유년의 설을 떠올리다가 오늘날 우리가 지내는 설을 생각하면 왠지 씁쓸한 마음 감출 길이 없다.


본래 설이란 ‘근신(勤愼)하다’ 즉 ‘삼가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말과 행동을 예법에 맞지 않게 하는 것을 삼가고, 깨끗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한다는 다짐이 포함된 것이다. 더불어 국가와 집안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식을 행하므로서 한 해를 잘 보내겠다는 의지를 새겼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난날 선조들이 가졌던 설의 의미를 되새기며 설을 지내는지 의심스럽다. 진정 언행을 조심스럽게 하여 몸과 마음을 깨끗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한 해를 보내겠다는 새해 첫날의 다짐이 있었다면, 오늘날 우리나라 구석구석에 만연한 부정부패와 사건사고는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부정부패와 사건사고는 돈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물질에 대한 검은 탐욕으로 얼룩진 오늘날, 열심히 일하면서도 허덕이며 살아가는 대다수 선량한 국민들의 원성은 이제 더 물러설 수 없는 벼랑 끝에 몰려, 옛날 같으면 민란이라도 일어날 판이다.


이제는 전통 설의 세시풍속이 많이 단절되었지만 옛날엔 섣달 그믐이 되면 아이들은 새해에 입을 색동까치옷을 미리 입고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과세 안녕히 하십시오” 하고 묵은 세배를 드려 까치 설날이라 하였다.


설날 아침이 되면 자손들은 조상의 산소를 찾아가 성묘를 하였다. 차례와 마찬가지로 일찍 장만한 음식을 묘 앞에 차려놓고 조상께 새해 인사를 드리는 것이다. 요즘엔 음식도 제대로 장만하지 않고 성묘도 다니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다. 겨우 집안 어른들께 세배하는 정도가 그나마 남아있다. 아이들 또한 ‘염불보다는 젯밥’이라고 세뱃돈에 더 관심이 큰 것이 사실이다. 모든 것이 편의주의와 물질에 함몰되어 본래 설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다.

 
이렇듯 설이 왜곡되기 시작한 것은 시간에 쫓기듯 바쁘게 사는 시대환경의 변화와 여러 가지 복잡한 격식을 귀찮게 여기는 세태가 반영된 까닭이다. 또한 80년대 군부독재세력들이 설을 배척한 이유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중과세를 막기 위해 양력 1월 1일을 설이라 하고 설을 구정, 또는 아무런 개념도 없는 ‘민속의 날’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전통과 조상이 숨결이 배인 설의 의미를 약화시킨 것 또한 오늘날 설의 의미를 퇴색시킨 하나의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사실 우리 민족처럼 민족의 대이동이라고 할 정도로 명절을 고향에서 보내겠다고 고향을 찾아가는 민족도 드물다고 한다. 이러한 힘은 우리 민족이 오랫동안 한반도에서 고유한 독립국가로 발전하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어찌보면 갈수록 빈껍데기 뿐인 하나의 연례행사가 아닌가 길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진실로 설의 의미를 새기고 후손들에게 본래 설의 취지를 가르쳐 오늘에 맞는 바람직한 설 의례, 설 세시풍속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아무리 현대사회가 핵가족화 되어 성장하면 대부분 집을 떠나 산다고 할지라도 농경사회 시절 우리 민족이 지녔던 아름다운 전통과 미풍양속은 전승 발전시켜야 한다.


이제는 굶지 않고 살만한 세상이어서 이웃집에서도 쿵더쿵, 우리 집에서도 쿵더쿵 하던 떡쌀 찧는 방앗소리를 기다리지는 않지만, 풍요로운 세상이어도 마음 또한 넉넉한 인심과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해를 경건하고 신성하게 맞도록 하자. 그래서 그 첫마음 한 해가 다 가도록 잘 간직하도록 하자. 그러한 마음이 부정부패와 사건사고, 그리고 침체의 늪에서 발버둥치는 우리 경제를 살리는 힘이 되고, 우리 민족이 세계 속에서 우뚝 웅비하는 21세기가 되도록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