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4.01.21 11:41

<강경호 시인의 추억의 창-24>

(시인, 문학평론가)
  옛날에는 소나무 가지가 휘어질 정도의 눈이 서정적으로 내렸었다. 더불어 사흘은 따스하고 나흘은 매서운 날씨를 보였는데 특히 바람이 많이 불었다.

추운 날 바람이 불면 아버지는 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피시고 어머니는 고구마를 쪄냈다. 간식거리로는 고구마가 그만이어서 말랑말랑한 찐고구마는 달착지근하게 맛있었다.

문밖에는 눈보라가 치는데 문풍지에서 소리가 났다. 지금 생각하면 여간 시끄럽다는 생각이 들었겠지만, 그러나 겨울이면 듣던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하는 악기소리였다.

우리 집엔 방이 둘이 있었는데 작은 봉창문까지 일곱 개의 문이 있었다. 6·25때 잠시 피난을 갔는데 그 사이에 누군가가 우리집 문짝들을 떼어가버려 문짝의 아귀가 잘 안 맞는다. 그러다보니 돌쩌귀가 흔들리고 문틈이 넓었다. 덕분에 가을에 문짝에 창호지를 새로 바를 때는 다른 집보다 문고리쪽 문풍지를 더 넓게 하곤 했다. 그래야만 문틈에 바람이 적게 들어오기 때문이다.

초겨울이 되면 어머니와 누님들은 집안의 모든 문짝을 떼어내고 문짝에 창호지를 발랐다.

대부분의 집은 월동준비의 하나로 창호문을 발랐다. 창호문 바르는 일을 주로 큰누님의 몫이었다. 먼저 낡고 때자국이 누렇게 된 문짝 위의 창호지를 뜯고 문창살에 풀을 발랐다.

큰누님은 아주 섬세한 손길을 가졌는데 보잘 것 없는 문이지만 창호지를 바를 때는 꼭 멋을 부렸다. 예쁜 꽃이나 나뭇잎을 창호지에 붙이고 그 위에 또다시 창호지를 붙였는데 문짝에 꽃이 피거나 낙엽이 떨어져있는 모습을 비춰 은근히 서정적인 기운이 나게 하였다. 뿐만 아니라 할머니가 창밖을 내다볼 때 자주 바라보던 봉창문에는 작은 투명한 유리를 끼어넣어 문을 열지 않고도 밖을 바라보게 하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창문에 구멍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짖꿎은 아이들이 밖을 내다보기 위해 창호지를 찢거나 손가락에 침을 발라 구멍을 내곤 하였다. 그 구멍으로 바람이 들어올까 봐 어머니는 창호지 조각을 덧대어 붙여 바르곤 하셨다.

눈내리는 겨울 밤엔 꼭 뒤꼍에서 부엉이가 울었다. 노랫말처럼 부엉이는 춥다고서 우는지, 아니면 배가 고파서 우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이들은 꿈결인 듯 동화속인 듯 부엉이 우는 소리를 들으며 겨울잠에 들곤 했다. 이런 날은 밤새 문풍지가 울었다. 문풍지 소리는 바람이 세게 불 때와 약하게 불 때 그 소리는 달랐다. 문풍지 소리는 바람이 바르르 떠는 창호지에서 나는 소리였다. ‘붕붕붕’ 소리를 내기도 하고 ‘윙윙윙’ 소리를 내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바람이 잦으면 온 세상이 절간처럼 고요했다. 그런 날도 아이들은 잘도 잤다. 꿈 속에서 산중의 노루나 산토끼가 추운 날 무얼 먹고 사는지가 궁금했다.

이제 창호지 문은 거의 사라진 것 같다. 간혹 한옥에서나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겨울 바람 부는 날 문풍지 우는 소리도 들을 수 없게 되었으니 사뭇 아쉽다. 모든 것이 간편한 인스턴트화된 시대가 삭막하게 느껴지는 오늘날, 동화속 이야기처럼 잠들지 못하고 눈에 불을 켠 채 밤을 지키는 부엉이 우는 소리와 어울려 밤새 떠는 문풍지 소리가 그리운 것은 나만의 심사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