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4.01.21 11:26

<강경호 시인의 추억의 창-21>

(시인, 문학평론가)
가을이 되면 나는 시인이 된 것 마냥 풀벌레 우는 소리를 들으며 시심을 키웠다. 지금 생각하면 어린 날의 시심이라는 것은 무척 유치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나의 시심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따가운 여름날이 저물어갈 무렵부터 저녁 때가 되면 제법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이때 쯤이면 집안 마루 밑이나 댓돌 아래, 또는 뒤안 어디선가에서 귀뚜라미가 울었다. 낮에는 여전히 따가운 날씨여서 고추잠자리 떼가 동네 골목에서 어지럽게 날고 있는 그런 때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귀뚜라미와 여치 등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밤벌레들이 우는 소리를 들으면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이 감상적인 수준이지만, 세상을 다 살아버린 사람처럼, 철학자가 된 양, 시인이 된 양 염세주의자가 되어버렸다.


가을이 깊어가면서 꽃들은 오래 전에 모두 떨어져버리고 나뭇잎새가 우수수 바람에 떨어져 몰려다닐 때 특히 마당 구석 어디선가에서 우는 귀뚜라미 울음소리는 가슴에 면도칼로 그어대는 것처럼 아려왔다. ‘귀뚤, 귀뚜루루’ 또는 ‘똘 똘 똘’ 귀뚜라미마다 음계와 목청이 다른지 제각각의 화음으로 울어댔는데, 그 목소리는 어떤 간절한 슬픔을 우는 듯한 소리여서 마디마디가 슬프게 다가왔다.


낙엽이 지고 한 해 동안 무성했던 것들이 사위어 가는 조락의 계절이어서 가을이 더욱 슬프게 느껴지는 것이었을까?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어서 모두가 잠든 깊은 밤중까지 호롱불을 밝혀놓고 누님들이 읽었던 연애소설 따위를 비롯해 이른바 세계의 명작들까지 닥치는 대로 읽고 있었다. 책 속의 슬픈 주인공에게 연민을 보이며 눈가를 촉촉이 적셨다. 그 때처럼 내가 가장 순수한 마음이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런 잠 못 이루는 밤 나와 함께 생명의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슬픈 사연을 울음으로 같이 한 친구는 어둠 속에서 밤을 보낸 풀벌레 울음 소리였다.


감나무잎이 하느적 하느적 지는 밤, 마을 앞이나 들을 바라보면 나는 풀벌레 울음소리에 포위되어 헤어날 줄 몰랐다. 세상의 어떤 악기보다도 더 아름다운 선율로, 세상의 어떤 유명한 작곡가의 악보보다도 더 아름다운 벌레들의 합창은 천상에서 벌어지는 음악회 같이 황홀했다.


귀를 기울여 들어보면 수많은 벌레들이 제각각 연주하는 소리가 선명했다. 그들의 합창은 락 음악 같고, 거문고 튕기는 소리 같고, 바이올린이 내는 소리 같았다. 거대한 오케스트라의 웅혼한 기품이 나를 가을밤의 대단한 음악회로 초대하는 것이었다.


이제 계절이 지나면 생명의 노래를 부르는 악사와 가수들도 모두 땅속이나 나뭇잎 이불 속으로 들어가고 말겠지만 살아있음의 환희, 또는 세상에서 가장 구슬픈 장송곡이나 슬프디 슬픈 누군가의 가슴 아픈 사연을 노래하는 듯했다. 그들이 가고 나면 나무는 벌거벗은 채 바람이 불 때마다 지난 계절을 고백하며 스스로의 회초리로 제 종아리를 후려치는 겨울을 맞을 것이다. 그때 쯤은 가을밤에 듣는 풀벌레 소리도 하얀 눈 속에 잠겨들고 말 것이다.


가을밤 내내 댓돌 밑에서 울어대던 귀뚜라미가 유난히 나를 슬프게 했다. 그 귀뚜라미는 아마 오래 전에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잊지 못해 가을이 되면 해마다 우리 집에 찾아와 그리움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문밖에서 들리는 귀뚜라미 소리를 따라 마루 아래로 내려갔다. 도대체 억세게 울어대는 놈이 누구인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내 발자국 소리를 들은 귀뚜라미는 울음을 뚝 그치고 마는 것이다. 댓돌 옆에서 한참을 기다렸지만 귀뚜라미는 나의 인기척을 느꼈는지 침묵할 뿐이었다. 다시 방으로 들어온 후에도 다시 귀뚜라미 소리가 들려오는데, 잠이 들도록 그 소리 그치지 않는 것이다.


이렇듯 애절하게 울어대던 유년의 가을밤 풀벌레 소리는 지금 떠올려도 그 곡조가 구슬프다. 어쩌면 나는 지금도 감상에 젖은 열세 살 짜리 유치한 시인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런 기분일 때면 그 옛날 귀뚜라미 우는 가을밤처럼 마음이 맑아지고 순해져서 마치 세례를 받은 것 같다.


가을이 되어도 귀뚜라미도 울지 않는 도시의 아파트, 귀뚜라미 대신 바퀴벌레가 극성이는 돼먹지 못한 얄궂은 시대의 서정을 도저히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이는 인간의 탐욕이 부른 재앙이기 때문에 우리가 감내해야 할 몫이 아닐 수 없다.


문득 “가을밤, 벌레우는 밤” 어쩌고 하는 노랫소리가 떠오르고 세상에서 가장 착한 표정을 짓는 소년이 되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