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4.01.21 10:59

<강경호 시인의 추억의 창-12>

강 경 호
(시인, 문학평론가)
내가 중학교 다니던 40년 전의 함평극장은 함평읍의 최고의 문화공간이었다. 오늘날처럼 텔레비전 보급이 안 되어 있던 시절이어서 어쩌다 학교에서 영화 관람이라도 있게 되면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리곤 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영화 관람을 허가한 날 이외에는 극장에 출입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극장 오른쪽에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었다. 탱자가시에 찔릴 수도 있지만 그것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었다. 탱자 울타리를 딛고 2층으로 올라가면 좁은 통로가 있다. 통로 중간쯤에는 창문이 있는데 그 창문 안쪽이 영사실이었다. 여기쯤을 낮은 포복하듯이 기어갈 때는 더욱 몸을 낮춰야 했다. 영사실에서 밖을 보게 되면 여지없이 들켜버리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는 몇 차례 몰래 극장에 잠입하여 도둑 영화를 보았다. 그러므로 그날도 도둑영화를 보러 대여섯 명이 어둠 속의 탱자울타리를 밟고 2층으로 올라갔다.


이미 우리들은 선수가 되었기 때문에 대부분 무사히 2층 영사실 부근을 지나 극장 1층으로 향했다. 나는 조심조심 도둑고양이처럼 1층 관람석으로 가는 계단을 내려가다가 발을 헛딛을 뻔 했다. 밝은 데에서 어둠 속으로 들어가니 아무 것도 안보였기 때문이다. 의자에 사람이 앉아 있는지 빈자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누군가 내 뒤통수를 마치 노지의 호박을 잡듯이 움켜쥐는 것이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그날 우리들은 극장 관리자에게 잡혀 큰 곤욕을 치뤘다. 무릎을 꿇고 앉아 있기도 하고 토끼뜀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꿀밤을 원 없이 먹었던 것 같다.


함평극장은 지난날 함평 사람들의 추억의 창고라고 할 수 있다. 무슨 영화가 읍내 극장에 들어왔다고 삽시간에 소문이 퍼지면 마을 각지에서 영화를 보러 왔다. 특히 명절 때면 대목을 누리는 영화가 상영이 되어 시골구석의 처녀총각들을 설레게 했다. 신영균, 김지미, 최무룡, 신성일, 윤정희 등 내로라하는 청춘스타들이 출연하는 영화이면 영화가 끝나는 날까지 극장은 만원이었다. 그때는 무슨 무슨 영화를 보지 않으면 대화에 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기를 쓰고 영화를 보고 영화 이야기 속으로 빠져 드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극장은 영화상영의 공간만이 아니었다. 뚱뚱보 백금녀, 바보 배삼룡, 만담꾼 장소팔, 고춘자의 쇼가 장터의 서커스보다 더 인기가 있었다. 영원한 청춘스타 남진이나 나훈아의 리사이틀이 열리는 날에는 함평읍내 사람들이 모두 극장으로 몰려들어 극장 안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월남파병 용사들 위문공연 갔다가 돌아왔다는 어떤 가수는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를 불러 히트했는데 극장 안은 그 가수의 열창에 도가니가 되었다. 또 어떤 가수는 동남아 순회공연을 막 마치고 돌아왔다고도 했다. 우리들은 극장벽보판에 관심이 많았다. 앞으로 어떤 영화가 상영이 될지 미리 영화 포스터가 붙여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공식적으로 함평극장에 들어갈 수 있는 날은 한 달에 한번 꼴이 채 안되었다. 영화 관람이 없는 달은 아쉽고 서운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우리들의 입담에서 오르내리는 영화는 대부분 학교에서 허가한 영화들이 아니었다. 모두들 모르게 함평극장에 들어가 영화를 관람했던 것 같았다.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들은 바에 의하면 함평극장은 6·25 전쟁이 끝난 후 군민들이 시름에 빠져있을 때인 1957년을 전후로 해서 문을 열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상영한 영화가 분단의 상처를 보여주는 「철조망」이라는 영화였다고 한다.


이제 함평극장은 십수 년 전에 사라졌다. TV의 보급과 영상매체의 발호도 그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당시 15만에 이르기도 했던 군민들이 이제는 3만여 명도 안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비 내리는 화면이나마 몇 번씩 끊어지던 영화가 아이들에게는 꿈과 상상력의 원천이 되었고, 어른들에게는 삶의 활력소가 되기도 했던 마력을 보여주던 요술의 집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이제 함평극장은 목욕탕으로 변했다. 함평군민들을 웃게 하고 울게 했던 추억의 장소가 되어버렸다. 사람은 나이 들어갈수록 추억을 먹고 산다고 한다. 한때는 우리들에게 꿈과 희망을 키워주던 극장이 세월의 흐름 속에 문화의 전면에서 마치 노인처럼 쓸쓸하게 퇴장하는 것을 보며 가슴 한켠이 아려온다. 그리고 세상에는 영원한 것이 없다는 것을 말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함평의 역사와 함께, 그리고 함평극장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이 땅에 살고 있는 한 회억의 공간으로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