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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의 맑은 영혼<강경호 시인의 추억의 창-9>

   
강 경 호
(시인, 문학평론가)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엔 아이들이 바른 언어를 쓰도록 하기 위해 욕을 많이 하는 아이들을 학교에 일러바치는 제도가 있었다. 고무지우개에 ‘욕지’라는 도장을 파서 그 도장으로 종이에 찍었는데 그것을 아이들에게 일정량을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욕을 하면 “욕지!” 하고 소리치면 욕을 한 아이가 ‘욕지’ 딱지를 상대 아이에게 한 장씩 줬다. 그런데 나는 우리 마을에서 가장 욕을 많이 한 대표선수로 뽑혀 교무실에 불려갔다. 실은 나는 욕을 전혀 하지 못하는 아이였다. 누가 시비를 하거나 귀찮게 하면 화만 냈다.

그런데 아이들이 내게 “욕지!”를 하면 나는 스스럼없이 ‘욕지’ 딱지를 내놓곤 하였다. 어린 나이였지만 아이들을 감시하는 이러한 학교의 제도에 반발하기 위해 욕 잘하는 마을 대표로 뽑혔다. 오히려 다른 아이들이 욕은 물론 다른 아이들을 못살게 하고 괴롭히는 것에 대한 나의 분노였다. 교무실에 불려가니 다른 마을 아이들도 있었다.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욕을 몇 번 했느냐고 물으셨다. 아이들은 세 번, 혹은 네 번 욕을 했다고 대답했다. 그때 나는 속으로 아이들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였다. 나는 욕을 안 하는 것도 좋지만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선생님이 나에게 욕을 몇 번 했느냐고 물었을 때 모른다고 하였다. 오기가 나고 화가 나서 수없이 많은 욕을 했기 때문에 욕을 몇 번 했는지 모른다고 대답하자 선생님이 나만 교실로 보내주셨다. 선생님도 정직한 나의 대답에 수긍이 갔기 때문일 것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나는 인간다움을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 고지식함은 내가 장차 살아가는데 하나의 잣대가 되어 나를 견인하는 힘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정직하고 법을 지키고 살아가는 나의 삶의 방식은 나를 힘들게 했다. 학교에서 바른생활 시간에 이렇게 살아라 하고 가르치고는 세상에서는 융통성이 없다며 법과 도덕을 지키는 바보로 취급하는 세태가 불편하다.


그렇지만 일찍이 초등학교 시절의 학교교육은 나에게 저항하고 항명하는 의식을 싹틔워 주었다. 정의롭고 모두가 함께 인간답게 살아가는 세상을 위해 작은 밀알이 되고자 노력했던 나의 삶을 이끌어 주는 힘이 되었던 것이다.


유년에 내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작은 벌레와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등 소리였다. 비가 오면 마당에 땅강아지가 기어다니고 지렁이가 땅 위로 나타났다. 나는 땅강아지가 땅을 파고 다니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이 있어 땅 속을 뒤지고 다니는지를 생각하며 관찰했다. 허기졌던 나는 땅강아지가 먹이를 찾아 땅을 뒤지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비가 그친 후 땅 위에서 기어다니다가 말라가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 하기도 하였다. 지렁이는 피부에 물기가 없으면 죽고 마는데 왜 스스로 죽음을 자처하며 햇빛 아래 나타나는지 의문이었다.

 
숲 속에 가면 참나무에 풍뎅이가 붙어있었는데 나는 그것들을 잡아 놀았다. 오늘날 같으면 차마 죽이지 못했겠지만, 나는 풍뎅이 머리를 뒤틀어 땅 위에 놓았다. 그러면 풍뎅이가 마당을 쓸고 다녔다. 풍뎅이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모습에 즐거워했다. 당시 풍뎅이는 하나의 장난감이었다. 벼논에서는 메뚜기가 뛰어다녔다. 오늘날은 농약 때문에 메뚜기가 많이 사라졌지만 당시에는 벼논 뿐만 아니라 풀섶에도 메뚜기가 후두둑 뛰어다녔다. 메뚜기는 잡아 구워먹거나 볶아 먹었는데 구수했다. 아이들에게는 훌륭한 간식거리였던 셈이다.


나는 혼자서 산에 오르는 것을 좋아했다. 마을 뒤에 두루봉이라는 산이 있는데 그곳까지 혼자 가기에는 이슥한 일이었다. 그곳에는 범바위가 있는데 옛날에 호랑이가 살았다는 곳이다. 그런데 혼자서 그곳에 가서 산아래 펼쳐진 풍경들을 바라보곤 하였다. 함평만에서 통통거리며 발동선이 주포항으로 오고 갔다. 산에서는 새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새소리를 흉내내었다. 바람이 나뭇가지에 부딪혀 나는 소리도 들려왔다. 나의 귀는 미세해져 바다에서 들려오는 파도소리까지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의 시심(詩心)을 키워준 것들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유년의 내 고향을 생각하면 온갖 벌레와 새와 소리들이 들려온다. 유년에 만난 온갖 것들이 나를 키우고 나를 이끌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영혼이 맑았던 시절이었다던 것이다.

김은식 기자  hpnews@hp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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