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3.09.12 10:51

 

이명재 약력
전남 함평생, 중대와 경희대대학원 졸업
197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평론가 활동
월간문학동리상, 조연현문학상 등 수상
중앙대 문과대 교수 역임, 현 명예교수
얼마전까지 기승을 부리던 수 십년만의 무더위에 지역 따라 별난 장마와 가뭄도 가시고 결실의 계절이 무르익어 간다. 입추에도 끄떡없던 더위마저 9월에 들어선 처서 이후 기세가 꺾이더니 백로 절후를 지나서 아침저녁으론 찬바람이 불어 추석을 맞는다. 역시 대자연에 따른 춘하추동의 큰 흐름은 어김없는 순리이니. 하지만 그 사이 상전벽해로 변해온 세태 속에서 맞이하는 이번 한가위 맞이에는 금석지감이 새롭다. 더욱이 사시사철 풍족한 먹거리 속에서 테블릿 휴대폰의 액정만 들여다보며 지내는 요즘 청소년들에게 이런 이야기가 통하기나 할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벌써부터 각 방향의 귀성열차표가 매진되고 고향을 찾는 사람의 행렬들이 여러 날 줄을 잇는다. 멀리 객지에 나가서 흩어져 살다가 모처럼 고향을 찾아 차례를 지내고 성묘하며 한식구들이 서로 만나 담소하기 위해서이리라. 일종의 추수감사를 겸해서 한데 모인 가족이 조상께 추모의 예를 갖는 추원보본(追遠報本)의 우리 추석문화는 미풍양속으로 뿌리깊이 자리하고 있다. 이번 추석연휴에는 해외로 나가는 여행상품이 동이 날 정도로 외국에서 보내는 사람들 또한 마음만은 한가위 풍정을 못내 아쉬워하리라. 나 또한 이번 한가위에는 온갖 것 다 뿌리치고 아늑한 함평천지에 내려가서 사나흘쯤 도심생활에 시달린 심신까지 식히고 올까 싶다.


스무 살 때 함평천지를 벗어나서 반세기 넘게 먼 도시를 떠돌며 살아온 필자에게 고향의 추석명절은 더 아련한 그리움으로 다가든다. 그게 어찌 나 뿐이겠는가. 하물며 여우도 마지막에는 제 살던 굴쪽으로 머리를 두르고 ‘수구초심(首丘初心)’ 한다는데. 객지에서 지내온 수 많은 분들의 경우는 숱한 사연으로 고향에 향한 정이 더하리라 싶다, 그러길래 미국이나 독일 또는 호주 등지에 이민 나가 살면서 추석달을 바라보는 교민들의 글에는 옛추억 가득한 망향의 그림자가 두드러져 보인다.


우리 어릴 때는 조국광복을 전후해서 그 찢어질 정도의 가난과 숱한 사회의 혼란속에서도 설날 못지않게 팔월 한가위를 손꼽아 기다렸었다. 더위가 물러가고 날씨도 선선해서 고추잠자리 잡고 뛰놀기가 마냥 좋아서만은 아니었다. 그날이면 꼬맹이들은 으레 좋은 고까옷에다 올벼 쌀밥이며 모싯잎떡부터 여러 색깔에 꼬소한 송편이랑 붉게 익어가는 단감, 대추, 능금, 석류, 복숭아 등의 풋과일들로 실컨 배를 채울 수 있었으니. 평소에는 그리 배곯다시피 궁색하게 지냈어도 이날만은 부자 부럽지 않은 넉넉한 마음이었달까. 그야말로 예전부터 우리에게는 어른들께도 다 함께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였던가 싶다.


추석날은 햇곡밥에 어른들 따라 차례를 지낸 다음 선산에 성묘를 마치고는 하루 종일 신나는 것이었다. 더러는 읍내 장터께에서 벌어진 난장판에 또래들이랑 함께 가서 어른들이 황소를 걸어놓은 고을장사 씨름대회를 구경하곤 했다. “다음은 학교면의 학생과 해보면 아저씨가 한 번 해보는 씨름입니다.”그리곤 팔뚝에 구렁이를 휘어감은 약장수의 배암 약 이야기에 눈과 귀를 판 친구에 이끌려 나왔다. “하여튼간에 이 비암놈에 거시기 몇 알만 묵어불먼 변강쇠나 변사또넌 쩌리 가분지요. 아이코 성님! 허고 물러난 뜻얼 알겄찌라우?” 창피해서 자리를 뜨는 아낙네들에 밀려 자리를 옮겼다.


길 건너 차일 친 쪽에는 광대마냥 헤진 바지며 곰보에 왕거지 분장에다 구성진 각설이 타령을 불러젖힌 엿장수가 손님을 모았다. 친구랑 그쪽으로 가서 엿치기 내기를 해서 끈끈한 개녓으로 부푼 입을 달랜 기억이 새롭다. “작년에 왔던 왔던 각설이……, 삼짜나 한 장 들고보오니…….” 또한 그 맞은편에는 나산 출신의 임방울 국창 제자라는 한복차림 아저씨가 손에 부채를 쥔 채 구성진 판소리 곡의 꼬리를 끌었었다. -“함평천지 늙은 몸이 광주 고향을 보려허고/ 제주어선 갈아타고 해남으로 건너갈 제/” 그 자리에서 만난 이장님은 술기운이 불콰해서 호남가에 장단을 맞추며 흥겨워하고 있었다. 그분 덕에 우리는 흰 국숫발에 구수한 멸치와 고춧가루를 뻘겋게 뿌려넣은 장터국수로 훌쩍훌쩍 허기를 달랬다. 그래도 친구는 그 진미로 소문난 한우 육회에다 참기름 고추장에 자르르한 돼지비계 두어 점을 섞은 함평육회비빔밥 맛을 못봤다고 투덜거렸다.


그 사이에 보름달은 이미 동녘 하늘높이 떠올라서 온누리를 밝게 비추고 있었다. 동산에 두둥실 떠오르기 전부터 새해 소망을 빌면서 달맞이 할 걸, 깜박했었다. 그래도 이러구러 읍내 개구쟁이 친구들한테 붙들려서 시달림을 받지않고 구경을 많이 한 것만 다행이라 싶었다. 지금의 함평여중 앞을 지나서 화양리 길로 접어들다 우리는 냅다 엄다 쪽으로 달렸다. 길가의 산등성이 밑에는 몇 개 으스스한 초분들이 머리를 쭈벗하게 했던 것이다. 와촌마을에 이르자 가까이서 흥겨운 꽹과리 소리가 들려왔다. -꽹꽹 꽤꽹 꽤꽹 꽹꽤꽹. 용동에선가, 별뫼쪽에선가?


농악놀이는 멀지않은 들녘의 길 가 마을인 해정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친구랑은 서둘러 구경꾼 속에 끼어들었다. 아까부터 마을의 회관 앞마당에는 꽹과리, 징, 장구, 소고꾼에 이어서 상모와 고깔 쓴 버꾸들 놀음이 한창이었다. 거기에서 포수가 총을 겨누는 시늉을 하자 혼비백산 하는 두두마기 양반꼴에 아낙네들이 박장대소하곤했다. 농악꾼들은 마당을 돌며 지신(地神)을 밟기에 부산했다. 앞에서 꽹과리를 든 상쇠가 고개를 젖혀대며 선창하자 따라서 복창하는 농악꾼들들의 장단 역시 구성졌다. - 동네 주민들 사십 가구/ 동네 주민들 사십 가구,/ 일취월장 만수무강이라/ 일취월장 만수무강이라.-


꼬맹이 친구들은 고개를 넘어 초등학교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달빛 언덕의 길가에 흐드러진 호박꽃을 따서 그속에 주위의 반딧불이들을 여러 마리 집어넣었다. 그 호박꽃등을 앞세우고 이웃 동네 밭등성이를 지나 제동으로 돌아와도 힘든지를 몰랐다. 우물 옆 마당에서는 벌써부터 강강술래가 한창이던 것이다. 누나나 아낙네들 사이에는 더러 아저씨도 끼어있었다.


하늘에는 잔별도 많고 / 강강술래,
이 내 가슴에는 수심도 많네 / 강강술래.
아낙이 메기는 구성진 중모리는 숨 가쁜 자진모리로 내달았다. - 달아 달아, 밝은 달아 / 강강술래/ 그래도 또래들은 전 해에 저질렀던 일로 구경만 하였다. 강강술래하는 누나들 치마폭에 또래 몇이 짓궂게 쇠오줌을 담은 물총을 쏴서 야단맞았던 것이다.


그런 강강술래 페스티발도 나중에는 뜀에 지친 아낙네들 매김이 진양조로 늘어져 갔다.
-가앙 가앙 수울 래, 가앙 가앙 수울 래, 동 해 동 천, 달 떠 온 다, 강 강 술 래.
밤이 이슥해서야 휘엉청 밝은 보름달을 머리에 이고 집으로 향하였다. 그림자를 밟으며 걷던 소년의 귓전에는 한밤중에도 이웃고을 나주나 무안 어디선가에서 징징하는 소리가 울려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징소리는 두 세대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해 묵은 도시소년의 가슴에 은은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이명재 약력
전남 함평생, 중대와 경희대대학원 졸업
197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평론가 활동
월간문학동리상, 조연현문학상 등 수상
중앙대 문과대 교수 역임, 현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