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0.01.25 10:09

김대종 광주매일신문편집국장, 호남대겸임교수
3년 전, 전 국민을 경악케 한 연쇄 살인범 정남규가 얼마 전 감방에서 끝내 자살하고 말았다.

사형집행에 대한 두려움이 얼마나 컸으면 자살을 택했을까, 아니면 더 이상 이사회에 대한 미련이 없어서 이었을까. 전자라면 극악무도한 사람치곤 언뜻 이해가 가질 않는다. 살인마가 자살하는 예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분명 사연이 있었으리라 본다. 까닭 없는 까닭이 어디 있겠는가 싶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니 의아해지고, 씁쓸해진다.

우리의 사형제도는 오래 적부터 있어왔다. 사형제도의 본질적 논리는 죄에 대한 응징이다. 사람이 사람을 죽였으니 어찌 나두고 볼 수만 있겠는가. 짐승만도 못한 놈이란 비난과 함께 감금조치 또한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살인자 역시 최고의 형별을 감수해야 함은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사람 죽인 놈은 차치하고 이를 어찌하랴. 살인자로부터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자. 그들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그저 죄 없이 그것도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죽어갔으니, 참으로 불쌍한 영혼들이 아닌가, 이들과 그 가족들은 어디다 하소연을 해야 한단 말인가. 참으로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겠다.

외마디 비명마저 묻힌 채 이승을 떠난, 불쌍하고 가여운 영혼들, 정말 우리 주변서도 한둘이 아니다. 이들은 저승에서 이 사회를 얼마나 원망하고 분개하고 있을까. 하도 억울해 아직껏 눈물로 날 밤을 새는 지도 모를 일이다. 엽기적 살인마를 생각하면 수많은 사람 앞에 부관참시해도 속 시원치 않을 일이로다.

우리 형벌 역사에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동해보복(同害報復) 형벌이 있었다. 또한 ‘살인자는 사형에 처한다(相殺, 以當時償殺)’고 못 박고 있는 고조선의 8조법도 있었다. 그렇고 보면 우리 역사도 살인자에 대한 엄한 형벌이 뒤따랐음을 알 수 있다.

13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형수 정남규, 서울과 경기도 지역에서 심야에 귀가하는 연약한 여성을 대상으로 무차별 살해를 감행한 작자다. 그런데 그가 자신의 감방에서 목숨을 끊으면서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혹자는 사형집행에 대한 불안감과 자괴감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얘기한다. 짐작컨대 사형수로 지낸 2년 반 동안 죽음의 공포에 시달렸을 게 뻔하다. 자신의 개인 노트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나타나 있었다.

“현재 사형을 폐지할 생각은 없다한다...덧없이 왔다 가는 인생은 구름 같은 것”이란 메모도 남겼다. 나름의 죽음에 대한 고뇌임이 틀림없다.

현재 우리나라 사형수는 몇 명이나 될까. 필자가 법무부 통계를 살펴보니, 정남규를 제외하곤 59명에 달하고 있다. 허나 지난 97년 12월 이후 만 10년 이상 집행이 없었다고 하니 우리나라도 사형이 비공식적으론 폐지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법률적 사형제 폐지’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민 법 감정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탁상공론에 부치거나 정치적 논리로 한순간에 사단 내버릴 일이 결코 아니다. 사회적 담론이 절대 필요하다. 사회적 합의 없이는 오히려 화를 부를 수도 있다. 만약에 논란 속에 사형제 존폐에 대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면 국민투표라는 방법도 있다.

강조컨대 함부로 국회가 나서 국민의 의중을 묵살하고 결론을 내려선 안 된다는 얘기다. 어느 나라든 일방통행 정책은 꼭 독재를 낳고 말았다. 역사의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