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09.11.16 12:39

윤석규(전 국무총리실 근무)

“내가 빈 화분을 놓아두었는데 누가 그것을 치우고 차를 댔어요. 화단도 우리가 가꾸고 꽃을 기르고 있는데 어떻게 차를 댈 수가 있냐고요!”

낯선 사람을 보고 짖어대는 불독처럼 잔뜩 찡그린 미간을 하고서, 직사포로 쏘아대는 아주머니의 화난 음성을 나는 듣고 있어야만 했다.

대꾸해 봐야‘거친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라고 생각하고 그저 이럴 때는 잠잠히 듣고 있는 것이 상책이다 싶어 가만히 있었으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목에 검붉은 핏대를 치켜세우는 아주머니의 독선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실 우리 빌라는 8가구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주차 시설이라면 시설이라 할 수 있는 골목 안의 공간이다. 그래도 제법 누가 흰 선을 그어 놓았는지 모퉁이에 빌라 몸체에 붙어있는 쓰레기통 앞의 한자리까지 합하여 모두 5대의 차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나 빌라에는 모두 8가구가 살고 있으니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그렇지 않아도 나는 차를 구입하기 전에 내가 차를 구입한다면 어디에 주차를 할 것인가, 주차 상태를 한 달 전부터 눈 여겨 봐 알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가장 좋은 자리인데도 종종 비어 있는 금역으로 여겨진 성역화(?)된 주차장이 있었는데 예의 아주머니네가 항상 주차했다고 하는 그 말썽이 된 자리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쌍눈을 치켜뜨면서 대드는 아주머니네는 전세라도 냈단 말인가? 누구로부터 독점권이라도 부여 받았다는 말인가? 무엇 때문에 공용 주차장을 자기 전용 주차장인 냥 우기고 있는 것일까? 미니 화단과 주차장과는 어떤 함수관계가 있는가? 몇 번 고쳐 생각해 봐도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나는 화를 내지 않았다. 혹시 백미러라도 밀어버리면 어쩔까, 훼손시키려면 얼마든지 할 수가 있다는 생각에 미치자 그 알량한 이해타산이 점점 더 혀를 굳어지게 만들었다.

더욱이 얼마전에는 이웃간에 주차로 살인까지 하지 않았던가! 이러다가 큰 봉변 당하기 전에 아무 소리 하지 않는 것이 나을 것이라 생각하고 나는 더욱 겸손해져서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두 손을 가지런히 가운데로 모으면서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아주머니 내가 차를 댈 때는 그 하얀 주차선 내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주차선 내에 화분이 있었다면 내가 내려와서 그것을 치우고 대야 하는데 귀찮아서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화분이 놓여있다면 치우고서 내 차를 댈 만큼 그렇게 뻔뻔한 위인이 못됩니다. 절대 오해 하시지 마십시오.”항상 눈에 띄던 화분이 그날은 없었던 것이다. 퇴근하고 곧바로 집에 왔기 때문에 7시경은 됐으리라. 빈자리도 있었다.

“우리도 한 번은 건너편 주차장에 주차했다고 혼이 났어요. 대판 싸웠어요.”소나기처럼 계속 퍼부어 대는 것이다. 건너편 주차장은 그 빌라에서 건물을 약간 뒤로 밀치고 정식으로 만들어 설계 건축된 전용주차 시설이므로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 주차시설은 다르지 않은가.

주인이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이다. 우리 빌라에 사는 사람이라면 일찍 들어오면 누구나 주차하도록 되어 있다. 그 성역화 된 자리는 항상 먼지를 뒤집어쓰고 무심하게 서 있는 빈 화분이 있고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것이다. 관례상 불문율이 되어 있었다. 차를 구입하기 전 눈 여겨 볼 때 12시가 넘었어도 빈 화분이 혼자 덩그러니 흰 페인트 주차선을 달밤의 국경선 보초병처럼 외롭게 지키고 있는 것을 틈틈이 보아왔다. 얼마나 간이 담대하면 이 자그마한 초미니 화단을 가꾼다는 것을 담보로 하여 공용주차 공간을 전용하려고 할까? 나도 그럴 수 있을까? 이웃집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일찍 들어오더라도 주차할 수 없게 하고 내차만 주차 시키겠다니 그것이 현대인, 도시인의 생활사고 방식인가 씁쓸하다.

특히 추운 동절기에는 시동을 걸고 잠시 기다려야 엔진에 무리가가지 않는다하더라도 바로 공지로 옮겨 몇 분 있다가 출발하는 것은 이웃들에 대한 따뜻한 예의다. 언젠가 지하방에서 살 때 일찌감치 시동을 걸어놓고 기다리고 있는 무례한 운전자의 소음과 가스 때문에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은 기억이 목사님이 언제나 꺼내 볼 수 있는 성경의 책갈피처럼 뇌리 한켠에 내재화 되어 있다.

고봉산 마루턱에 걸터앉은 허리 굽은 소나무와 잡목사이로 겨우내 층층이 쌓아 올린 눈덩이 아래 벽지장 같이 창백하고 엷은 얼음장사이로 들어주는 이 없는 노래를 부르며 티 없이 흐르는 차고 맑은 개울물처럼 살기에는 서로 너무 멀리 가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