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07.06.08 10:01

쑥국에 장모님의 눈물이



 “형님, 저희가 처형 회갑 생일상을 근사하게 차려드릴게요.”
 두어 달 전부터 멀리 동해 간절곶(울산))에 사는 손아래 동서 鄭서방이 전하는 말이다. 동서가 온다고 하니 반갑긴 해도 잔치를 벌이면 많은 처가식구가 모이게 되고 경비 또한 만만치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손아래 사람들에게도 부담을 줄 것 같아서 만류를 했다.
 그는 “언제 형님 내외분께 그럴싸한 대접을 한 적이 있었느냐?”며 큰 처형을 장모님으로 여기고 한 턱 쓰겠다고 우겨댔다.
 드디어 아내의 생일날이 다가왔다. 마침 그날이 일요일이라 처가댁 식구들이 거의 빠지지 않고 예약한 식당에 모였다.
 한복으로 곱게 차려입은 아내, 그리고 그 옆으로 남편인 내가 앉아 명색이 회갑연 의식이 시작되었다. 동서의 진행으로 환갑 생일잔치의 축하인사와 함께 아우들의 선물 전달과 아내의 답사가 있었다. 이어서 다 같이 잔을 들고 짠! 하면서 외치는 “생일축하, 건배!” 소리가 우렁찼다.
 잠시 후 남편인 나는 조용히 일어나 인사말을 대신하여 詩 [쑥국]을 낭송하기 시작했다. 오늘의 행사를 주관하는 처제를 생각하며 며칠 전에 써놓은 詩이다.


[쑥국] 동빈 김양기


된장으로 버무려 끓인 질그릇 / 한 숟갈 뜨다보니 웃음 나온다
동해 큰 마을로 시집가던 해/ 소녀티로 건너온 목소리
언니 쑥국은 어떻게 끓여
통치마에 봄바람 잡아넣으며/ 쑥 캐다가 추억 심을 때
나물바구니 옆에서/ 소꿉장난만 했었나


 여기까지 읽어 내려가니 나는 벌써 감정이 솟구쳐 약간 떨리고 있었다.
 “언니 품안의 어린 처제가 벌써 함께 늙어가는 마당에 그 언니의 환갑상을 차려주는 위치가 되어버렸구나.” 하는 마음이 드는 순간이었다. 정작 본인인 처제는 물론, 다른 처남과 처제들도 함께 눈시울을 붉히고 훌쩍거리기 시작하는 분위기였다.
 나는 잠시 마음을 가다듬느라고 읽던 시를 멈추었다. 그리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분위기는 한층 숙연해지는 듯 했다. 나는 더욱 심정을 가다듬고 계속해서 시를 낭송했다.


집 앞 무논에서 우렁쉥이 건져다/ 보글보글 걸쭉한 맛깔국물
쑥국새 소리 들릴 때마다/ 훨훨 날아 찾아가 본 봄철 처가댁.


 이렇게 읽어가는 나의 목소리는 어느덧 옛 처가댁으로 여울지며 달려가고 있었다. 일찍이 남편을 여윈 장모님은 구남매를 키워내고 호강을 받을 즈음,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몹쓸 병환으로 몸져누웠을 때 봉투를 쥐어드리는 손을 붙잡고 “김 서방은 언제나 높은 사람이 되는가?” 하더니 며칠 후 그 무거운 세상의 눈을 감아버렸다.
 그 후로 꼭 삼 개월, [당신의 김 서방]은 그  뜻을 이루었던 것이다.
 글을 읽고 있는 동안, 사위 왔다며 고샅을 울리고 씨암탉 잡아 걸게 상 차려 내놓던 추억의 장모님 얼굴이 쑥국 냄새와 함께 봄철 처가마을로 날아가고 있었다.
 방안은 한층 숙연해 지면서 간간이 훌쩍거리는 소리로 채워졌다.
 나는 종이를 접으며 어색한 표정으로 “오늘 같이 좋은 날에 장모님을 생각하니 눈물이 다 나오네!” 하고는 손수건으로 눈물 자국을 지웠다. 모두의 눈에도 벌써 이슬이 맺혀 있었고 입가에는 엷은 웃음이 스치는 喜悲가 어울리는 장면이었다.
 동서(同壻)는 다시 우리 형제들의 화목과 단합을 의미한다는 의미에서 술잔을 부딪치자고 건배제의를 하였다. “짠! 처형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두 내외분의 건강을 빕니다. 축하, 축하!”
 모처럼 처남 동서들 간의 우의를 다지는 뜻 깊은 아내의 생일잔치 자리였다.